매일신문

[임터뷰] “간병살인 더이상 없도록”…가족돌봄 담장 허무는 엄마들

몸을 아예 못 쓰는 뇌병변 장애인…돌봄 센터 입소 자체가 불가능해
사회적협동조합 형태인 '함께맘'…중증중복장애 엄마들 출자로 운영
"장애 유형에 맞게 돌봄도 나눠져야…집에서 고립되는 순간 삶 파폐해져"

# 어느 엄마의 하루는 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로 시작된다. 양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들은 혼자서 밥도 못 먹는다. 그렇기에 엄마는 한나절의 자유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기저귀를 채우고 1시간 내외 짧게 볼일을 보러 나가는 게 전부. 욕창을 막으려 체위를 바꾸는 중노동에 엄마의 몸은 골병이 들었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 전정순 대표가 뇌병변 장애인과 함께 신체 활동 체험을 하고 있다. '담장허무는 엄마들'은 뇌병변 및 중증·중복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자발적 참여로 결성한 단체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 전정순 대표가 뇌병변 장애인과 함께 신체 활동 체험을 하고 있다. '담장허무는 엄마들'은 뇌병변 및 중증·중복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자발적 참여로 결성한 단체다.

지난해 10월 대구 남구서 뇌병변 1급 장애 아들을 40년간 돌보다 숨지게 한 60대가 붙잡혔다. 지난 17일에는 달서구 한 아파트에서 50대 아들이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살해한 뒤 목숨을 끊었다. 거동이 불편한 가족이 다른 가족을 살해하는 이른바 '간병살인'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가족돌봄'의 굴레에 갇힌 복지사각지대가 만들어낸 비극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근본적 대책이 없어 반복되는 '예고된 비극'이다.

가족을 간병하는 이들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집을 둘러싼 '담장' 안에서는 얼마나 외롭고 고된 시간이 주어지는 건가. '담장' 밖 세상으로 나올 수 없는 걸까. 기자는 중증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을 만나 '담장' 속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그리고 엄마들은 아이와 함께 '담장'을 허물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고 있다.

-뇌병변 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이 모여 '담장 허무는 엄마들' 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더라. 단체 소개를 해달라.

▶관심을 갖고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나는 담장 허무는 엄마들 전정순 대표다. 뇌병변 및 중증중복장애인의 엄마이기도 하다. 담장 안 엄마들의 하루는 자식을 돌보다 끝난다. 아이를 데리고 담장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여건이 좋지 않다. 아이들이 엄마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엄마들이 힘을 합쳐 단체를 만들었다. 2019년에 결성했으니 벌써 6년째다.

-자녀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 많이 어려운가. 장애인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적인 부분은 잘 돼 있다. 특수교육은 지적장애·지체장애·자폐장애·시각장애·청각장애 등 5가지 장애 유형별로 분리해 교육을 받는다. 고등교육까지 12년 의무교육이고 전공과 교육도 2년 있다. 그러다 보니 어쨌든 간에 (아이들이) 22살까지는 갈 곳이 있다. 학교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책임 져주니 부모들도 숨 쉴 구멍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특수교육을 14년간 잘 받아 놓으면 뭐하나. 그 이후에 갈 곳은 집밖에 없다.

사회적협동조합 '함께맘'에서 뇌병변 장애인들이 신체 활동을 하고 있다. '함께맘'은 중증 발달장애인 자녀들이 배우고 생활하는 주간 활동서비스센터다. 뇌병변 중증중복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이 500만 원씩 출자금을 내서 직접 운영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기도 하다.
사회적협동조합 '함께맘'에서 뇌병변 장애인들이 신체 활동을 하고 있다. '함께맘'은 중증 발달장애인 자녀들이 배우고 생활하는 주간 활동서비스센터다. 뇌병변 중증중복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이 500만 원씩 출자금을 내서 직접 운영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기도 하다.

-요즘 장애인 센터가 잘 돼 있지 않나. 그곳으로 가면 되지 않는가.

▶다들 이렇게 생각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특수교육에서 실컷 지적·지체·자폐·시각·청각 장애인을 분류해서 교육 시켜놓고는 장애인 센터는 이들을 모두 통합해서 운영한다. 그러니까 교육은 5개 장애 유형을 분리했으면서 돌봄은 한곳에서 진행해버리는 것이다.

-함께 돌봄을 받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 건가.

▶시각이나 청각, 자폐 장애인은 일단 움직임이 가능하지 않는가. 혼자 밥도 먹을 수 있고 배변 활동도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 한 명이 서너 명 케어하는 것도 문제없다. 하지만 뇌병변 장애는 몸을 아예 못 쓰다 보니 1대 1 아니 2대 1도 버겁다. 그렇기 때문에 센터에서는 우리 아이들 같은 중증중복 장애인 수용을 꺼리게 된다. 대구에 장애인을 돌보는 센터가 80여개 쯤 있어도 우리 아이들 같은 중증 장애인은 입소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생각도 못한 부분이다. 그렇다면 센터에서 수용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 같다.

▶그렇다. 운 좋게 입소를 하더라도 문제가 생기는 게 장애 유형별로 똑같은 프로그램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뇌병변 아이들은 미안함이나 고마움을 다 느끼고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지만 몸을 아예 못 쓰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이동 자체를 못한다. 반면 자폐 아이들은 스스로 배변활동이나 식사가 가능하지만 에너지가 충만하고 움직임이 크다.

그런데 이 유형들이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활동한다. 예를 들자면 장애인 센터 지침으로 일주일 세 번은 외부 활동을 하라고 정해놨다. 하지만 뇌병변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참 어렵다. 일단 이동 자체가 나들이 콜을 불러서 한 사람이 한 차로 이동해야 하고, 소변이 보고 싶다 해도 아무 화장실을 데려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밖에 나갈 때 패드를 채우고 나가려고 해도 거부하는 아이들이 있다. 프로그램들이 일원화되어 있다 보니 센터에서 중증중복장애인은 꺼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 아이들은 학교 교육 실컷 받고서는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 재가 장애인으로 비참하게 살 수밖에 없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 전정순 대표.
'담장 허무는 엄마들' 전정순 대표.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장소인 사회적협동조합 '함께맘'을 만들 수 밖에 없었겠다.

▶그렇다. '함께맘'은 중증 발달장애인 자녀들이 배우고 생활하는 주간 활동서비스센터다. '함께맘'은 뇌병변 중증중복장애 자녀를 둔 엄마들이 500만 원씩 출자금을 내서 직접 운영한다. 대구에 '함께맘' 같은 중증 발달장애 센터는 '라온센터'가 있다. 대구광역시에서 만든 것인데 '함께맘'이 만들어지기 전에 생긴 곳이다. 이곳도 우리 엄마들이 시에 찾아가서 목소리를 내며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라온센터는 아이들이 2년밖에 못 있는다. 2년 있으면 또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또 갈 곳이 없어진다. 그래서 엄마들이 힘을 합쳐 '함께맘'을 만들었다. 지금은 11명의 아이들이 입소해 있고, 다음 달부터는 13명으로 늘어난다.

-조금전에 보니 뇌병변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신체활동을 하더라. 아이들에게 정서적 그리고 신체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9시에서 5시까지 아이들을 돌봐준다. 체조나 스트레칭, 공예, 요리, 노래, 미술, 한글 교실 등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레벨에서 모든 활동이 진행된다. 장애 특성에 맞게 돌봄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대기자도 많다. 하지만 이들을 모두 수용할 공간은 안된다. 이런 센터가 더 생겨나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또 엄마들이 출자금을 내서 만든다? 이렇게 하다 보면 끝이 없다. 그러니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분리해서 교육하는 특수교육 제도처럼 돌봄도 분리가 돼야 한다. 장애 유형에 맞게 센터가 나눠져야 한다. 이는 뇌병변 장애 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집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사례도 줄지 않을까.

인터뷰가 끝나니 찾아온 점심시간. 센터에는 밥 짓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뇌병변 장애인 옆에 붙어 밥을 떠먹인다.
인터뷰가 끝나니 찾아온 점심시간. 센터에는 밥 짓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뇌병변 장애인 옆에 붙어 밥을 떠먹인다.

-그렇다. 간병살인은 범죄임이 분명하지만 또 이해가 된다는 여론도 많다. 이는 중증 장애인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을 국가와 사회보다는 가정에서 감당하는 현실에서 나온 이야기 인 듯 하다.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주변에 이런 일들이 많다.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은 중병에 노출이 많이 돼 있고 암도 많이 걸린다. 스스로 목숨 버리는 엄마들도 많다. 가정불화도 많고, 우울증 약 먹는 것은 다반사다. 소수자의 복지는 국가가 알아서 해주지 않는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이 나서는 이유기도 하다. 우리가 나서서 대구시가 '라온센터'를 만들었더니 서울에서도 중증장애인을 위한 센터가 만들어졌었다.

사회적협동조합 형태인 '함께맘'은 대구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보여주면 언젠간 전국에도 중증장애인을 위한 센터가 많이 생기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 아이들만을 위해 움직이는게 아니다. 전국의 장애인 엄마들이 쓸쓸하고 외롭게 집에서 아이와 고군분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9년 엄마들은 담장을 허물기 위한 단체를 결성했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은 뇌병변 및 중증·중복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자발적 참여로 결성한 단체다. 이들은 라디오에도 나오고 책도 썼다. 아이들을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2019년 엄마들은 담장을 허물기 위한 단체를 결성했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은 뇌병변 및 중증·중복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자발적 참여로 결성한 단체다. 이들은 라디오에도 나오고 책도 썼다. 아이들을 위해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은 아이들을 위한 단체이기도 하지만, 엄마들을 위한 단체이기도 한 것 같다.

▶그렇다. 센터 말고 대명동에 엄마들을 위한 공간도 있다. 이곳은 항상 북적인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엄마들이 모여 봉사도 하고 위로도 나눈다. 집에 고립되는 순간 엄마도 아이도 피폐해져 간다. 하지만 엄마들이 모이면 정보도 나누고 마음도 나눈다. 엄마들은 그야말로 살기위해 나온다. 담장을 허물 수 있도록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다.

인터뷰가 끝나니 찾아온 점심시간. 센터에는 밥 짓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뇌병변 장애인 옆에 붙어 밥을 떠먹인다. 오전에 신체 활동을 한 덕분인지 밥맛은 꿀맛이다.

만약 이곳이 집이었다면 그곳도 이곳처럼 시끌벅적했을까. 엄마 홀로 씨름하느라 아이의 밥시간을 훌쩍 넘기지는 않았을까. 담장에 갇힌 엄마들 그리고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이 세상도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나가길 또 한 번 간절히 소망한다.

인터뷰가 끝나니 찾아온 점심시간. 센터에는 밥 짓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뇌병변 장애인 옆에 붙어 밥을 떠먹인다.
인터뷰가 끝나니 찾아온 점심시간. 센터에는 밥 짓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뇌병변 장애인 옆에 붙어 밥을 떠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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