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배부른 의사'라는 말을 극복하라

이화섭 기자
이화섭 기자

지난 설날 친척,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첫 번째로 언급된 화제는 '의대 정원 확대' 문제였다.

이 주제가 나오자 친척 어르신 한 분이 일갈했다. "정원을 확 늘려서 싸가지 없는 의사들 콧대를 확 꺾어 놔야 해." 어르신은 지금까지 병원 진료를 받을 때나 사적으로 만났던 의사들의 오만한 모습들을 털어놨다.

"어차피 의사들 돈 잘 벌잖아요. 의사를 늘려서 그들의 수입이 깎여 본들 우리보단 더 벌 거 아녜요?" 의대 정원 증원에 찬성한다는 지인의 얘기였다.

이 말들 속에서 '의사'에 대한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 똑똑한 모습을 겉으로는 부러워했지만 속으로는 '재수 없다'고 했고, 일반 자영업자나 회사원보다 훨씬 수입이 많으니 부럽지만 배도 아프다.

대형 병원에 가면 비싼 진료비를 내면서도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고, 두세 마디 한 뒤 돌려보내니 제대로 진단하고 치료한 건지도 알 수 없다. '의사'라는 직종에 대한 이율배반적 마음과 불신이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셈이다.

유튜브에 공개 사직서를 낸 한 수련의 얘기처럼 '의사에 대한 인식이 적개심과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상황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며 사직서를 던진 전공의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싸늘하다. 의료계도 이런 면을 모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를 각오하고 시작한 싸움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의료계가 눈부시게 발전한 이면에는 전공의들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가 숨어 있다. 이들이 근무 환경이나 처우를 개선하려 목소리를 내면 '돈 많이 받는 직업이 말도 많다'며 몰아붙이는 한국 사회가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게다가 국민들은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가 부족하다면서 의대 증원은 왜 반대하느냐"고 비난한다. 국민들은 설득을 요구하지만,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수가 부족한 배경에는 낮은 수가와 의료사고 처벌 가능성 등을 피해 미용 의료로 발길을 돌린 의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의대 입학 정원 2천 명 확대 방안은 의학 교육 현장부터 뒤집어 놓을 가능성이 크다.

설령 '의자 더 갖다 놓는 수준'의 수업이라 할지라도 평소보다 1.5배 많은 학생이 들어찬 경우라면 제대로 교육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해부학부터 다양한 실험을 바탕으로 의학의 기본 지식을 쌓는 의대 수업은 보다 더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논리에도 충분한 설득력과 근거가 있다. 의대 교육 현장을 조금이라도 아는 국민이라면 의사들의 주장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진행된 대규모 연구를 통해 적정한 의사와 보건의료 인력 규모를 추산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결국 전공의들을 포함한 의료계가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얻어 내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느냐에 이 문제의 해결책이 달려 있다.

지금 정부는 국민들이 의사에 대해 갖고 있는 묘한 질투심과 불신감을 등에 업었다. 그래서 아주 자신감 있고 강경하게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의료가 무너진다'고 주장하는 의료계, 특히 젊은 의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국민들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한다. 이성적으로, 또 감성적으로도 모두 설득해야 국민들이 의사들의 주장에 동조해 줄 것이다.

이제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디 젊은 의사들이 수능 수학 영역 4점짜리 문제를 푸는 마음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고민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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