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속으로] 세계적 개념미술가 루이스 캄니쳐 “한국에서의 첫 전시, 흥미로워”

갤러리 신라 대구, 서울서 국내 첫 전시
판화, 오브제, 장소특정적 설치 등 선보여

갤러리신라 대구에서 전시 중인 자신의 작품 앞에 선 루이스 캄니쳐. 이연정 기자
갤러리신라 대구에서 전시 중인 자신의 작품 앞에 선 루이스 캄니쳐. 이연정 기자
갤러리신라 대구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갤러리신라 대구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어떤 이는 예술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어떤 이는 예술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어떤 이는 예술로 시대를 기록한다.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루이스 캄니쳐(Luis Camnitzer)는 예술로 사회적 불의와 억압, 제도에 대한 비판을 해왔다. 그의 작품은 어딘가 잘못 됐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무겁지 않다. 독설적이지만 유머러스하고, 혼란스럽지만 신선한 그만의 언어는 50여 년간의 깊이 있는 작업을 더욱 돋보이게 한 매력이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첫 전시가 갤러리 신라(대구 중구 대봉로 200-29)에서 열리고 있다. 87세의 나이에도 작품 설치와 전시 오프닝을 위해 직접 대구를 찾은 그는 서구권과 전혀 문화가 다른 한국에서의 첫 전시에 대해 기대를 표했다.

캄니쳐는 "내가 오래 살았던 우루과이는 한국과 대척점에 있는 나라다. 지구 정반대의 나라에서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이 흥미롭다"며 "특히 내 예술세계는 많은 설명이나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한데, 과연 한국에서는 내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할 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1937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우루과이에서 조각, 건축을 전공했고 이후 뉴욕으로 이주해 언어와 관객 사이의 반사적인 관계를 탐구하는 데 초점을 두고 판화 등의 작업을 이어왔다. 1960~19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군부독재에 저항하며 사회·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작업했고, 1980년대 이후 설치와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1970년 뉴욕 MOMA 전시를 비롯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영국 테이트모던, 뉴욕 휘트니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 유수의 미술관과 화랑에서 개인전, 그룹전을 연 바 있다. 또한 베니스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뉴욕 휘트니비엔날레, 독일 카셀 도큐멘타, 쿠바 하바나비엔날레 등에도 참여했다.

A Museum is a School, Site-specific installation, media variable, overall dimensions variable, 2009, ©Luis Camnitzer
A Museum is a School, Site-specific installation, media variable, overall dimensions variable, 2009, ©Luis Camnitzer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미술관은 학교다'이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외벽에 'The Museum is a School. The Artist learns to communicate, The Public learns to make connections.(미술관은 학교다. 예술가는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대중은 교류하는 법을 배운다)'라는 문자 작업을 설치한 것이다. 예술의 상업성을 경계하는 동시에 교육의 공간인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도록 하는 의도가 담긴 대표적인 개념 작업으로 손꼽힌다.

캄니쳐는 대구 전시에서도 'Here lies a work of art(여기 작품이 누워있다)' 등 장소특정적 작업들을 선보인다. 언어를 기본 매체로 탐구하는 그다운 작품인데, 긴 직사각형으로 쌓은 흙 위에 '여기 작품이 누워있다'는 문장을 놓아둠으로써 작품인 동시에 작품 감상을 방해하는 텍스트에 대한 개념 작업이다.

그는 "문장 자체를 작품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문장이 더 이상의 상상력을 펼칠 수 없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며 "그러한 두 가지 의도를 다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 '자화상' 앞에 선 루이스 캄니쳐. 이연정 기자
자신의 작품 '자화상' 앞에 선 루이스 캄니쳐. 이연정 기자
루이스 캄니쳐의 작품 'The Path'. 저 길을 걸으며 작품을 경험한 사람은 문화적 엘리트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제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루이스 캄니쳐의 작품 'The Path'. 저 길을 걸으며 작품을 경험한 사람은 문화적 엘리트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제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게 뭐라고, 걷는 걸로 그런 구분을 한다고?"라고 말한다면 작가의 의도를 어느정도 이해한 셈이다. 우리는 이처럼 아무 의미 없는 행위에 쓸데없이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른쪽 끝에 놓인 한국식(?) 빗자루는 특별히 작가의 요청으로 가져다 둔 것이라고 하니, 직접 길을 걷고 난 뒤 흙도 정리해보길 권한다. 이연정 기자

전시장에는 이외에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판화와 오브제, 설치 작업들이 소개된다. 우리가 아무 의미 없는 일에 쓸데없이 신경을 쓰거나, 소위 '있어보이려는' 행위들이 결국 아무것도 아님을 간접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작품들이다.

캄니쳐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예술을 통해 못 보여준다면, 예술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해왔다. 나아가 사회를 운용하는 시스템에서도 잘못된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인지하게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50여 년간 끊임없이 예술가이자 비평가, 교육자, 이론가로서 활동해온 것은 예술에 대한 '애증'때문"이라며 "애(愛)만 있으면 열정이 아니다. 기존의 패러다임과 틀의 경계를 뛰어넘기 위한 증(憎)이 함께 있었기에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22일 개막한 그의 대구 전시는 4월 27일까지 이어지며, 갤러리 신라 서울(종로구 삼청로 111)에서도 3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053-422-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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