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스티브 잡스의 터틀넥, 젠슨 황의 가죽 재킷…CEO 패션으로 보는 경영 철학 [트렌드경제]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 검은색 목폴라 티셔츠를 유니폼처럼 착용했다. 연합뉴스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 검은색 목폴라 티셔츠를 유니폼처럼 착용했다. 연합뉴스

고급 정장과 넥타이는 'CEO'(Chief Executive Officer)를 떠올리게 하는 옷차림이다. CEO의 결정에 따라 세계적인 기업의 운명이 결정된다. 전략적 사고와 리더십, 통찰력, 문제해결 능력 등 요구되는 능력도 다양하다.

혁신을 주도하는 CEO를 상징하는 패션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다. 패션은 단순한 옷차림이 아닌 개인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특히 CEO 패션은 리더의 성향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인식된다. 성공한 CEO들을 상징하는 스타일과 이면에 숨겨진 경영 철학을 살펴본다.

◆ 유니폼을 동경한 혁신가 스티브 잡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한 가지 스타일을 고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검은색 터틀넥과 리바이스 청바지, 회색 뉴발란스 운동화는 잡스를 나타내는 아이템이다. 출퇴근은 물론 아이팟, 아이폰 등 신제품을 공개하는 프레젠테이션(PT) 무대에 설 때도 같은 옷을 입었다.

1976년 애플을 설립한 잡스는 초창기엔 셔츠와 넥타이를 고집했으나 1980년대 초 일본 방문을 계기로 터틀넥을 '유니폼'으로 삼았다. 월터 아이잭슨이 집필한 스티브 잡스 전기에서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소니는 전자제품 선두주자로 명성이 높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경제를 일으켜 세운 주역이었다. 당시 일본을 찾은 잡스는 소니 직원들이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은 것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아키오 모리타 사장에게 이유을 물었다.

이에 모리타 사장은 "전쟁 후 입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사원들에게 유니폼을 제공했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소니의 특징으로 발전했고 서로 단결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소니의 유니폼은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에 의뢰해 만든 제품으로 소매가 지퍼로 제작돼 이를 떼어내면 조끼로도 입을 수도 있었다.

깊은 인상을 받은 잡스는 이세이 미야케를 만나 애플 직원들을 위한 디자인을 부탁했고 시안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잡스는 미야케의 조끼를 유니폼으로 입자고 제안했지만 애플 임직원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잡스는 미야케와 친구가 됐다. 두 사람은 편의성이나 스타일 측면에서 잡스가 자신만의 유니폼을 입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미야케는 잡스가 유니폼으로 선택한 검은색 터틀넥 수백장을 제작했다. 잡스는 생전에 옷장에 쌓인 터틀넥을 보여주며 "평생 입을 만큼 충분한 양을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의 선택은 혁신 기업 애플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 공식 석상에서 입는 옷을 무채색으로 통일하면서, 애플이 내놓은 제품 혹은 서비스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옷을 고르는 데 시간을 절약하고 업무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수단이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신의 옷장. 거의 매일 착용하는 회색 티셔츠가 걸려져 있다. 메타 제공
마크 저커버그가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신의 옷장. 거의 매일 착용하는 회색 티셔츠가 걸려져 있다. 메타 제공

◆ 저커버그의 후드, 젠슨 황의 가죽 재킷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페이스북을 만든 '메타'의 CEO 마크 저커버그도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회색 티셔츠 혹은 회색 후드를 거의 매일 착용한다.

지난 2016년 육아휴직을 마친 저커버그는 자신의 옷장을 공개한 바 있다. 옅은 회색 반팔 티셔츠 9벌과 짙은 회색 후드티 6벌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같은 옷을 입는 그에 대한 비난 여론도 적지 않았다. 마이클 패터 애널리스트는 저커버그의 패션에 대해 "후드 티셔츠는 투자자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미성숙함의 표식"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저커버그는 자신이 같은 패션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한 답을 내놨다.

그는 페이스북 사용자와의 공개 질의응답에서 "어떻게 하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까를 제외한 다른 고민은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내 생활을 단순하게 하고 싶다"면서 "어떤 옷을 입을 것인지,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 같은 사소한 결정도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는 심리학적 설명이 매우 많다"고 답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GTC2024 무대에 선 젠슨 황. 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GTC2024 무대에 선 젠슨 황. 연합뉴스

AI(인공지능) 시대의 주역 엔비디아의 창업주 젠슨 황은 가죽 재킷을 즐겨 입는다. 엔비디아가 주최하는 연례 행사인 GTC 무대에 오를 때 매번 가죽 재킷 패션을 선보였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높은 관심 속에 열린 올해 GTC 기조연설에서도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었다. 젠슨 황이 이날 착용한 가죽 점퍼는 톰 포드 2023년 봄 컬렉션으로 추정된다. 소매가는 8천990달러(약 1천194만원)에 이른다.

젠슨 황의 패션은 아마존, 구글 등을 누르고 시가총액 상위 5위권 내 진입한 엔비디아의 '강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과 혁신을 주도하는 열정을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 지난해 5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행사에 참여한 젠슨 황은 "어떻게 가죽 점퍼를 입고 더위를 견딜 수 있냐"는 질문에 "나는 항상 쿨하다"고 답한 일화도 있다.

미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뉴스의 '오토모티브 뉴스 올스타(2023 Autumotive News All-Stars)'에서 최고 영예인 '자동차 산업 올해의 리더(Industry Leader of the Year)'로 선정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자동차 제공
미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뉴스의 '오토모티브 뉴스 올스타(2023 Autumotive News All-Stars)'에서 최고 영예인 '자동차 산업 올해의 리더(Industry Leader of the Year)'로 선정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자동차 제공

◆ 넥타이 풀어헤친 대기업 총수들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회장은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는 세계 모빌리티 시장을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하고 있다. 정 회장의 패션은 기업 문화 쇄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미국의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 뉴스(Automotive News)가 선정한 '자동차 산업 올해의 리더'(Industry Leader of the Year)에 올랐다.

당시 정 회장은 "'휴머니티를 향한 진보'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헌신하고 있는 현대차그룹 모든 임직원과 파트너들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모델이 된 그는 전기차 아이오닉 5 앞에 포즈를 취했다. 푸른색 셔츠에 아이보리 치노 팬츠를 착용한 그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모습이었다.

올해 신년회에서도 정의선 회장은 넥타이를 하지 않고 운동화를 신고 기업의 비전에 대해 설명했다. 이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24 전시회장에서는 카키색 가죽 재킷을 입고 부스를 누볐다.

또 40대 젊은 총수 구광모 LG 회장은 공식 석상에서는 주로 정장을 입지만 그룹 행사에서는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국내 이공계 R&D 인재 400여 명을 초청해 개최한 'LG테크콘퍼런스'에 참석한 구 회장은 청바지에 운동화, 검은색 후드 집업 패션을 선보였다. 해당 행사는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진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다.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인재들과 소통하는 자리에 걸맞은 캐주얼한 의상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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