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정일의 새론새평] 추락, 무너짐, 깔림, 끼임, 치임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오정일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계화로 사람들은 더럽거나, 어렵거나, 힘든 노동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이 과정에서 '블루칼라'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고, '화이트칼라' 노동자와의 소득 격차는 커졌다. 인공지능으로 인한 기계화의 영향은 정반대다. 인공지능은 주로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4년제 대학 졸업자 업무의 75%를 대체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자 업무는 17%만 대체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공지능의 영향은 직업에 따라서도 다르다. 수학자는 인공지능으로 완전히 대체된다. 반면, 패스트푸드 종업원, 접시 닦이, 세탁업자, 목수, 도장공(塗裝工), 지붕 수리공, 벌목공은 대체가 어렵다.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지 않는 직업은 임금이 낮다.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비싸기 때문에 사람을 쓴다. 기계화가 가능해도 경제성이 없으면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한다. 임금이 높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인공지능으로 대체한다. 임금이 낮은 '블루칼라' 업무에는 사람을 투입한다. 그것이 자본의 논리다.

인공지능 시대에 '블루칼라' 임금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임금 상승에는 한계가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공지능은 저렴해진다. 어떤 직업이든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쌀 때 기계화가 시작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소득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틀렸다. 앞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은 더럽거나, 어렵거나, 힘든 일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다.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는 형사 처벌될 수 있다. 이 법은 정의(正義) 측면에서 타당하다. 노동자는 생산하기 위해 사업장에 간다. 사업주가 노동자를 사업장에 오게 했다. 사업주에게 일차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기업에 책임을 묻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기업은 법인이고, 법인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효율적이기도 하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기업이 피해 보상을 하지만, 기업이 부담하는 비용은 사회적 비용에 못 미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노력을 소홀히 한다. 사업주의 형사 처벌 가능성은 기업이 체감하는 산업재해 비용을 높인다. 그 결과, 기업은 사고 예방에 힘쓰게 되고 산업재해가 줄어든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는 비판도 많다. 비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고용주를 형사 처벌하는 것이 과(過)하다. 이 법이 시행된 후 형사 처벌된 사건이 적어서 실효성이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뒷문이 열려 있다. 고용주를 형사 처벌하려면 고용주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하고, 이로 인해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해야 한다. 의무 위반과 산업재해의 인과관계는 노동자가 증명해야 한다.

산업재해 관련 정보는 기업이 더 많이 갖는다. 정보가 적은 노동자가 인과관계를 증명하기는 어렵다. 영국에도 '기업살인법(Corporate Murder Act)'이 있지만, 이 법이 시행된 14년 동안 유죄 판결은 33건에 불과하다. 처벌이 엄한 만큼 유죄 판결도 적었다. 1년에 유죄 판결이 1건이어도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형사 처벌 가능성이 사고를 줄인다.

2016년 노동자 6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失明)했다. 비싼 에탄올 대신 메탄올을 사용한 결과다. 노동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모른다. 근로계약을 할 때 기업이 급여나 고용 형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만, 작업의 위험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상대적으로 기업은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적은 비용으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 고용주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장치이다.

우리나라는 하루 두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사고 종류는 다양하다. 추락, 무너짐, 깔림, 끼임, 치임. 그동안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원인을 노동자 과실(過失)에서 찾았다. 가지 말라는 곳에 가서, 시키지 않은 일을 했다는 식(式)이다. 세상에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위험을 감수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그 이유를 찾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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