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노공이산

박상봉 시인

박상봉 시인
박상봉 시인

'노공이산(盧公移山)'은 어리석은 노인의 우직함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을 바꿔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사용한 필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를 맞아 박운음 화백이 그린 웹툰 '노공이산'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그의 어린 시절을 회고해 본다.

어린 노공에게 가족들의 믿음과 사랑으로 결정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 일이 생겼다. 그는 밖에서 도둑질 한 적은 없었지만, 가끔 어머니의 주머니를 뒤지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어머니의 돈을 훔친 어린 노공은 형이 의심받고 있는데도 모른척 했다.

"형이 뒤집어쓰는 마당에 저렇게 시치미를 떼니 커서 도둑놈이 되면 우얄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푸념하는 어머니의 걱정과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는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는 부모님의 애정 섞인 대화를 듣고 노공은 정신이 번쩍 들어 다음날 아침, 눈물로써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오히려 꾸짖지 않고 "눈물 뚝 그치라! 우리 막둥이는 큰사람 될끼다!"라면서 아이가 스스로 소중한 존재로 여길 줄 알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는 꿈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줬다. 이런 부모 마음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대통령이 되는 훌륭한 인재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어리를 품었던 사람/ 모두가 이로움을 좇을 때 홀로 의로움을 따랐던 사람/ 시대가 짐지운 운명을 거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 밖에는 가진 것 없이도/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던 사람/ 그가 떠났다"(유시민).

벌써 15년 전 일이다. 그날 노무현 대통령의 비보를 접하고 많은 국민들이 눈물을 흘렸다. 바보 노짱의 치열했던 삶을 생각해보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노무현이 어떤 사람인가? 보통 출마자들의 경우 거의 패닉 상태로 몰고 간다는 선거 패배를 네 번씩이나 당하고도 바로 추스르고 일어난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떤 어려움도 묵묵히 감내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간 뚝심의 사나이. 그런 사람이 자살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지역 감정을 돌파하기 위해 종로구 국회의원을 버렸고, 국정 표류의 위기를 진정시키려고 대통령직도 버릴 정도로 위기 때마다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버림으로써 국면을 돌파해온 강인함과 혜안을 가진 인물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가 부엉이바위 위에 섰을 때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허공을 향해 홀연히 자신의 몸을 던지는 그 순간에 "날자, 날자, 한 번만 날자꾸나"라고 외쳤을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에는 절망이 없다. 그의 죽음은 새로운 희망의 화두를 던져주고 갔다. 노공은 갔지만, 우리 함께 '우직한 힘'을 모아 산을 옮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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