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민폐'(民弊)와 가장 가까운 의미의 일본어가 '메이와쿠'(迷惑)일 것이다. '남에게 번뇌를 일으켜 마음을 소란하게 하다'는 불교적 용어이기도 하다. 타인의 속내까지 고려하는 일본인 특유의 심장한 의식을 반영한 언어이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교육을 받고 자란 일본인들의 몸에 밴 생활 습관이자 중요한 사회적 가치관이기도 하다.
그래서 큰 사고가 일어나 아들 딸이 죽어도 슬픔을 드러내기보다는 '사회에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이 우선이다. 사건의 피해자가 오히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죄한다. 이 같은 자기 억제와 상대 배려의 문화가 '칼 같은 질서 의식'을 낳았다. 혹자는 보다 분방한 기질의 한국인과 비교해서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이란 대구(對句)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같이 표현의 자유와 개성의 표출을 억압하는 메이와쿠 문화에 신세대의 저항이 일어났다. 틱톡(TicTok) 관종의 유행이다. 일본 사회에는 적잖은 충격일 것이다. 여고생이 닫히는 지하철 문 사이에 몸을 끼워 넣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출발을 지연시킨 일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라면집에서 젓가락을 핥아 다시 수저통에 넣거나, 초밥집 간장통에 침을 뱉는 장난 영상도 있었다.
모두가 틱톡 영상을 찍기 위한 일탈 행위였다. 틱톡커의 민폐 행동은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서점 테이블 위에 올라가 고성을 지르거나, 분장을 한 채 영업 중인 매장을 활보하기도 한다. 대형 마트 안에서 우유와 시리얼을 들고 가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다가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지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경찰서 앞에서 자기 머리에 밀가루를 쏟아붓는 영상도 있다.
영상이 자극적일수록 조회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의 우려와 달리 청소년들은 이 같은 현상을 응원하며 더 특별한 민폐 영상을 기대하기도 한다. 틱톡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눈길을 끌기 위한 선정적인 콘텐츠가 많이 올라오는 플랫폼 중의 하나이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눈치도 염치도 없이 어떠한 망나니짓도 서슴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학습한 숏폼(Short-form) 영상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joen04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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