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이 발표한 '2024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flawed democracy)로 분류되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추락한 원인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정당 간 뿌리 깊은 갈등,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 이 지적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겠지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비상계엄 4개월 만의 대통령 탄핵과 6개월 만의 대통령선거는 제도와 시스템의 힘으로 회복한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준다. 그러함에도 더욱 극단화된 정당 갈등과 정치 양극화는 새로운 불행의 예고편이다.
6·3 대선을 왜 치르게 되었는가. 그것은 직접적으로 초헌법적 비상계엄의 결과이자, 구조적으로 양극단의 망국 정치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주역은 이 나라를 결딴내고 있는 양당의 기득권 세력이다. 대통령제와 양당제를 축으로 한 승자독식 권력구조 하에서 세 가지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그래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6·3 대선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그러나 적대적 공생을 강화한 양당의 대선후보 경선 결과는 희망을 저버리게 만든다. 강성 지지층의 여론이 정당 경선을 주도하는 한 국민통합형 후보 선출은 한낱 망령된 꿈이다.
사실상 대관식을 치른 민주당은 이재명을 후보로 선출했다. 그는 역대 대선후보 중 보기 드문 파렴치한 전력의 소유자이자 권력욕의 화신이다. 법과 재판을 능멸해온 그의 법꾸라지 행적은 도덕을 정치 규범에서 삭제시켰다. 또한 민주당은 이재명 방탄의 시녀로 전락하며 국정과 민주주의를 심대하게 훼손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찬성 세력을 밀어내고 김문수를 후보로 선출했다. 그는 정책에서 실용적이지만 이념에서 극우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자유통일당 대표 이력과 탄핵 반대 주장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따라서 김문수가 자력으로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경우 대선 이후 국민의힘도 탄핵의 늪에서 지리멸렬하며 분열할 것이다.
6·3 대선은 세 프레임 간의 치열한 전쟁이다. 우선 민주당 친명계는 내란종식론을 제기한다. 이 주장은 이재명을 절대 상수로 상정하고 반대 집단을 내란 동조범으로 몰아세운다. 가령 대법원 판결에서 이재명이 전과 5범의 멍에를 쓰자 이를 사법 내란으로 공격하는 식이다. 급기야 대법원장과 대법관 탄핵을 선동하며 삼권분립체제의 근간을 파괴한다. 이재명의 후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법처리에 항거하는 파시스트적 준동이 이 주장에 의해 정당화된다. 여기에 진보인 척하는 식자층과 정파운동의 무리가 앞장서서 부역하고 있다.
다음으로 국민의힘 친윤계는 탄핵반대론 뒤에 은신해 있다. 강성 지지층이 부르짖는 윤어게인(Yoon Again)이 그 결정판이다. 이는 윤어웨이(Yoon Away)를 외쳐도 시원찮은 판에 가당찮은 주장이다. 내란종식론이 권력 중독의 다른 표현이라면, 탄핵반대론은 권력 포기와 다를 바 없다. 이재명에게 권력을 헌납하는 이와 같은 필패론은 친윤계의 당권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김문수는 친윤 부활의 불쏘시개라는 세평이 잦아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제3지대에서 개헌연대론이 제기된다. 이는 정치 양극화를 마감하고 임기단축 개헌으로 새로운 공화국을 개막하자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현금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지만, 그것을 실현할 동력과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양극단 세력 청산과 개헌을 위한 초정파적 선거연대 플랫폼이 요청된다. 그러나 역대 대선에서 제3세력의 다자간 연대가 실현된 전례가 없어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덧붙이면 세 대선 프레임을 변형시킬 수 있는 한 가지 변수가 놓여있다. 김문수·한덕수 간 후보단일화다. 보수후보 간 단일화를 통해 탄핵 반대 후보가 낙마하면 제3지대의 최대연합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비상계엄에 대한 명백한 사죄와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선거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미로 찾기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경우의 수는 유권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프레임을 민주주의의 길로 선택하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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