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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송지혜] 여행 전날의 마음, 무대 막 오르기 전의 마음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송지혜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송지혜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우리 공연장은 눈에 띄게 분주해진다. 하루를 즐겁고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는다. 관람 동선을 체크하고,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을 미리 제거하며,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점검한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선한 마음들이 모여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해야 할 일들은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가며, 준비가 부담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몰아치는 긴장감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지금 이 감정은, 마치 여행을 준비하는 전날의 내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걸.

우리는 먼 미래의 여행을 계획할 때면 꿈에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여행을 앞둔 하루 전, 현실의 무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늦게까지 짐을 싸며 빠뜨린 건 없는지 동동거리고 동행과 은근한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긴장감에 전날 날 밤 잠들다 깨기를 반복한다. 급기야 "내가 이 여행을 왜 하자고 했을까, 다음엔 절대 가지 말아야지"하고 후회하는 마음까지 올라온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모든 복잡한 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첫 풍경을 마주하는 그 순간, '오길 정말 잘했다'는 말이 절로 나오고, 전날까지 속을 뒤흔들던 스트레스와 갈등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 속에 묻힌다. 결국 여행은 '다시 가고 싶은 경험'으로 남게 되고, 어느새 다음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공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처음 기획을 시작할 때는 막연한 기대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머릿속에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기뻐하는 장면, 어린이들이 행사장에서 뛰노는 모습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하지만 현실은 늘 이상보다 무겁다. 준비를 이어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계속 생기고, 예산은 늘 빠듯하며, 팀원 간의 의견 차이도 불가피하다. 하루하루가 넘어야 할 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준비 과정에 누군가가 상처가 되기도 한다. 결국 처음의 기획 의도를 잊어버릴 때도 있다.

그렇지만 공연의 막이 올라가는 그 순간, 무대 위의 시간은 관객과 함께하는 여행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 눈빛으로 전해지는 감동은 그동안의 모든 수고를 '그래서 해볼 만했다'는 기쁨으로 바꿔준다. 공연을 함께 본 관객들은 마치 여행을 함께한 친구처럼 느껴지고, 뜻하지 않게 마주한 돌발 상황조차도 나중에는 특별한 추억이 되어 남는다. 그렇게 한 무대는 '다음에 또 해보고 싶다'는 다짐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계획하지 않는다면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닫혀버린다. 여행이든 공연이든, 시작하기 전엔 늘 힘들고 두려운 순간이 따르지만, 그렇다고 시작하지 않으면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결국 우리가 힘들게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를 올리는 이유는 바로 그 특별한 한순간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힘든 과정을 지나 도착한 무대 위, 그곳은 우리가 모두 '오길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여행지와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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