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용삼의 근대사] 유교, 주자성리학, 그리고 공산주의

전쟁에 환멸을 느낀 공자는 문명의 진보가 참극을 불러왔으니 철기시대를 거부하고 석기시대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전쟁에 환멸을 느낀 공자는 문명의 진보가 참극을 불러왔으니 철기시대를 거부하고 석기시대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조광조를 필두로 한 사림은 개인적 수양과 도덕 경제를 통해 이상적 철학국가 건설을 꿈꾼 조선의 재야 운동권 세력이었다. 이들이 중종 시절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도덕국가 만들기로 질주했다.
조광조를 필두로 한 사림은 개인적 수양과 도덕 경제를 통해 이상적 철학국가 건설을 꿈꾼 조선의 재야 운동권 세력이었다. 이들이 중종 시절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도덕국가 만들기로 질주했다.
21세기의 한국에서 유교식으로 차례 지내는 가구가 53%라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전 세계에서 주자성리학적 전통과 예법, 도덕률과 가치관이 가장 충실하고 철저하게 지켜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21세기의 한국에서 유교식으로 차례 지내는 가구가 53%라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전 세계에서 주자성리학적 전통과 예법, 도덕률과 가치관이 가장 충실하고 철저하게 지켜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채진원 교수의
채진원 교수의 '586 정치인의 세계관'은 586 정치인들의 행태가 조선의 주자성리학자들과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힌 저서다.
이황직 교수의
이황직 교수의 '군자들의 행진'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에는 유교인들의 성리학적 사유구조와 도덕지향성이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 책이다.

조선 근대화의 발목을 단단히 잡은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뿌리는 공자가 체계화한 유교, 즉 주자성리학이다. 위정척사는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고(위정),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사악한 학문으로 배격하는(척사) 반제 민족주의 운동이었다.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는 춘추시대 말기 인물이다. 문명사적으로는 청동기시대 후기에 태어나 철기시대에 활동했다. 철기 문명은 농업 생산성 향상을 불러와 풍요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제후들은 생산성 향상에 따른 잉여가치를 군사력 양성에 투입한다. 그 결과 제후국 간에 전쟁이 일상화된 전국(戰國)시대가 개막된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현실에 절망한 공자는 '전쟁 없는 평화 시대'를 갈망했다. 그는 태평성대라 불렸던 요순(堯舜)시대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문명의 진보가 참극을 불러왔으니 철기시대를 거부하고 석기시대로 돌아가자고 외친 것이다.

송나라 시절 주희라는 학자가 유교사상을 토대로 성리(性理)·의리(義理)·이기(理氣) 등 형이상학 체계로 우주와 인간의 근본 문제 탐구한 것이 주자성리학이다. 고려를 무너뜨린 이성계 일파는 중국의 성리학을 받아들여 나라의 근본으로 삼았다. 주자성리학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융합적 사고를 통해 지식의 발전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상당히 많은 철학 체계다. 조선에서는 성리학이 중국의 첨단기술 도입을 위한 이론적 바탕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조선 초 중국의 강남농법을 수용했고, 과학기술을 받아들였으며, 한글 창제까지 이루어냈다.

◆도덕경제 지향

하지만 유교와 주자성리학의 기본 바탕은 어디까지나 전쟁 예방을 위한 문명의 회귀였다. 그들은 농업을 장려하고, 상공업으로 재물을 축적하는 행위를 비판하는 도덕경제(moral economy)를 지향했다. 인간은 하루 세 끼 먹는 데 필요한 양식만 확보되면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가르친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하면 서로 빼앗기 위해 투쟁하므로!

부(富)는 악의 근원이요, 청빈(淸貧)은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 된다. 청빈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회에서는 선의의 경쟁을 통한 발전을 지향하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뿌리 내리기 어렵다. 이것이 도덕경제의 심각한 한계다.

16세기 중종 시절, 조선 개국에 협력하지 않고 지방에 은거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던 사림 세력이 중앙 무대에 대거 진출한다. 재야 운동권 세력인 사림은 개인적 수양과 도덕 경제를 통해 이상적 철학국가 건설을 꿈꾸었다. 조광조를 필두로 한 사림은 사헌부(검찰), 사간원(언론), 홍문관(학계) 등 3사를 장악하고 이념 투쟁을 벌여 권력 장악에 성공한다. 권력 획득 방식이 586 주사파와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조선 중기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으로 부상한 사림은 사분오열하여 격렬한 당쟁을 벌였다. 당쟁의 주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 대결이 아니었다. 누가 더 도덕적이고 청빈한가, 누가 더 주자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가, 누가 더 중국에 사대를 극진히 하고, 중국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는가를 둘러싼 피 튀기는 투쟁이었다.

1582년 선조는 율곡 이이에게 성균관 학칙을 정비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이이는 소학·대학·논어·맹자·중용 등을 필독서로 지정했고, 학문 내용도 형이상학적인 주자성리학, 중국 역사 위주로 재편했다. 경제성장의 핵심인 공학이나 테크놀로지, 상업·유통·무역은 철저히 배격했다. 덕분에 조선은 상공업이 퇴화하고, 나라 전체가 공리공론으로 흘러 '먹물들의 천국'으로 돌변했다.

사림은 자신들의 대선배인 정몽주 영웅 만들기에 나섰다. 정몽주는 조선 건국을 반대하고 목숨 바쳐 고려에 충성한, 조선 입장에서 보면 역적이다. 하지만 주자성리학 논리로 보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대의를 지킨 충신이다. 사림은 이런 논리로 격렬한 노선투쟁을 벌인 끝에 정몽주를 일약 조선 주자성리학의 도통으로 추대했다.

이 논리를 따르면 김구 영웅 만들기는 손쉽게 이해된다. 김구는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한 인물이다. 586 주사파들은 김구의 행위를 분단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통일 민족자주정부 수립이라는 대의를 위한 살신성인의 노력으로 바꿔치기했다. 김구를 민주화의 도통으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조선시대 사림에 의한 정몽주 영웅 만들기의 완벽한 데자뷰다.

주자는 덕치를 바탕으로 하는 왕도(王道)정치를 이상향으로 설정했다. 국왕은 하늘의 명을 받아 덕을 베푸는 정치를 통해 백성을 보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주자성리학자들은 법을 앞세워 백성을 굴복시키고, 부국강병을 위해 백성을 고단하게 하는 행위를 패도(覇道)정치로 경멸했다.

◆부국강병을 거부한 조선

조선이 자발적으로 투항한 사대주의는 안보를 중국이 책임져주는 시스템이다. 중국 덕분에 상비군 없이 안보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자위한다. 실상은 그런 주장과는 달랐다. 조선의 유일한 산업인 농업은 생산성이 낮아 정부는 늘 재정이 궁핍했다. 돈이 없어 상비군을 유지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부국강병을 시행할 경우 득을 보는 세력은 칼잡이(무인)와 상공업자다. 군대를 양성하면 칼잡이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할 우려가 있다며 일부러 군대를 양성하지 않았다. 또, 상공업이 발달하여 백성들이 먹고 살 만해지고, 문리가 트이면 양반 통치에 저항할 우려가 있다.

주자성리학자들은 상공업 발달을 극력 통제하여 백성을 가난과 무지 상태로 방치했다. 백성이 가난하고 무식해야 통치하기 쉽다는 보편적 진실은 오늘의 북한이 모범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결국 조선은 중국 책이나 달달 외우고 시나 작문하는 능력이 고작인 양반 관료들이 대대손손 백성을 흡혈귀처럼 착취하기 위해 나라가 망할 때까지 문치(文治)의 길을 고수했다.

중국의 속방국 통치자는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아야 자기 나라를 다스릴 권위를 인정받았다. 조선 권력의 핵심인 양반 관료가 되려면 한문으로 된 중국 역사와 철학, 중국학자의 글, 중국 제왕 일대기를 암송해야 했다. 그 종착역은 중화사상을 맹종하는 사대사상이었다. 사대사상은 소중화주의를 거쳐 조선이 곧 중화가 되었다는 '조선 중화주의'로 활활 타올랐다.

21세기의 한국에서 유교식으로 차례 지내는 가구가 53%라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전 세계에서 주자성리학적 전통과 예법, 도덕률과 가치관이 가장 충실하고 철저하게 지켜지는 나라가 한국이다. 조선 양반들은 자신들이 명나라의 후예임을 자임하며 조상이 중국에서 왔다고 족보에 기록해 놓았다.

중국은 이를 근거로 한국은 중국인이 한반도로 건너가 세운 화교국가라고 주장한다. 중화 사대에 환장을 한 한국인들의 행태 덕분에 한국 영토는 중국의 영토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중 동조론의 뿌리다. 미국의 아시아 전문가들은 현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면 한국은 자연스럽게 중국에 흡수되어 중국에 속한 1개 성(省)의 지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

조선왕조는 왕토에 존재하는 모든 땅과 산림은 국왕 소유라는 토지 왕토설을 신봉했다. 논밭과 대지를 제외한 산림·광물·수산물은 사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주자성리학이 추구하는 도덕경제에서는 사(私)의 도덕적 정당성, 즉 사유재산은 인정되지 않았다. 덕분에 상해 임정을 비롯하여 해방 후 지주계급의 이해를 대변한 한민당까지 모두가 토지는 왕유(王有)였음을 근거로 토지 국유화, 토지재산에 대한 공적 규제에 동조했다.

이런 근거를 통해 보면 유교(주자성리학)와 공산주의는 상당 부분 유사성이 발견된다. 유가에서 꿈꾸어온 대동(大同)세계, 즉 평화롭고 자유로운 이상사회와 마르크스가 추구하는 공산주의 목표는 닮은꼴이다. 동양에 전파된 공산주의는 자급자족하며 모든 것을 공유하고 함께 나누는 농업사회를 이상향으로 설정했다. 이것이 구한말 주자성리학자들의 이상향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성리학자들은 개화·개방·통상을 지향하는 자유시장경제는 산업화·도시화를 촉진하여 자신들의 이상향인 농촌 사회를 파괴한다고 보았다. 농경사회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선의 위정척사 지식인들에게 공산주의는 말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나라 잃은 조선의 독립을 돕겠다고 나선 존재는 소련과 중국공산당이 유일했다. 그 결과 독립운동과 공산주의가 손잡으면서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586 운동권'은 21세기형 주자성리학자

채진원(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전담교수)은 586 주사파 운동권 그룹이 공유하고 있는 도덕주의적 선악관의 집약체는 위정척사론과 소중화론을 내포한 '주자학적 민족주의론'이라고 주장했다('586 운동권 그룹의 유교적 습속에 대한 시론적 연구'). 이황직도 '군자들의 행진'이란 저서에서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에는 유교인들의 성리학적 사유구조와 도덕지향성이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586 운동권'의 행동양태와 사유체계는 조선의 운동권인 주자성리학 사림세력의 완벽한 재현이란 뜻이다.

그들은 세금이란 이름으로 가진 자의 재산을 빼앗아 못 가진 자들에게 시혜를 베푼다. 자신들은 민주화를 성취한 고귀한 존재이므로 특별대우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민주화 운동가들은 21세기 판 양반 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섬기는 상국은 조선시대에는 명·청이었고, 20세기 초에는 소련공산당과 코민테른, 21세기에는 중국공산당과 주사파 교주 김일성 일가다.

그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국화와 사법부, 언론, 학계, 문화계를 총동원하여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 더불어 잘살기, 민주·민족·민중을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만드는 작업에 성공했다. 이제는 미중 신냉전의 한복판에서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중국 중심의 신천하질서로 회귀하려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21세기형 주자성리학자인 586 주사파들의 대행진, 그 마지막 종착역은 어디일까?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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