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케케묵고 고리타분한 원칙이 아니라 4·19 혁명과 1987년 민주화를 거쳐, 온 국민이 쟁취한 위대한 유산이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정치 권력에 휘둘리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지구상 가장 강력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도 사법부는 의회나 대통령에 휘둘리지 않고 견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버드대에 대해 외국인 유학생 등록 금지 명령을 내리자 연방법원이 즉각 대학 측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제동을 건 것은 미국식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트럼프처럼 인권을 침해하는 긴급 명령을 발동한다면 사법부가 즉시 제동을 걸 수 있을까?
시진핑(習近平)의 중국과 김정은의 북한을 보자. 이들 사회주의 국가는 삼권분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은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당 우위 국가체제로 사법부는 공산당의 하부 기관으로 철저히 통제받는다. 중국 사법부는 최고인민법원 아래 보통·중급·고급 법원의 4단계로 구성돼 있지만 재판은 2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중국 각급 법원은 판사들이 독자적·독립적 판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 서기가 판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최근 친정부 성향 한겨레신문이 실시한 유권자 패널 조사에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검찰 다음으로 낮다는 결과가 제시됐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조차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사법의 정치화가 국민이 감내(堪耐)할 선을 넘었음을 의미한다. 판사의 정치 성향에 따라 형량은 물론 유·무죄 판결이 달라지고 재판이 한없이 길어지는 것을 목도한 국민들의 사법부 불신이 극에 달했다. 유력 정치인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판결을 하거나 '위증범은 중형, 위증교사범은 무죄'라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속출하면서 사법부 불신이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로 비화(飛火)하기에 이르렀다.
사법부의 위기는 정치권력의 압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법원이 자초하고 판사들 스스로가 정치화되면서 '법복 입은 정치인' 노릇을 한 결과임을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사법부의 정치화를 주도한 단체들이 정치권력과 결탁, 사법부를 장악한 이후 사법부는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졌다. 사법부 스스로 정치화되면서 '사법의 위기'가 초래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해소는그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국정 운영 안정 측면에서 이 대통령과 여당에겐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본질은 '사법의 위기'이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실 민정수석 산하 민정·공직기강·법무·제도개선 비서관에 각각 자신의 재판 변호인으로 활동한 이태형·전치영·이장형·조상호 변호사를 내정한 것은 논공행상(論功行賞)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대통령은 권순일 대법관을 포함해 사법적 고비마다 수호천사 역할을 해 준 다른 법관들에게도 합당한 보상을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구속 영장 발부에 제동을 건 유창훈, 재판 지연의 달인 강규태와 김동현, 유죄를 무죄로 둔갑시킨 정재오·최은정·이예슬, 유죄취지 파기환송심 재판을 무기 연기시킨 이재권 등이 그 대상일 것이다. 이들은 이 대통령을 지켜 준 일등 공신이다. 가히 '법복 입은 정치인'이라 할 만하다.
diderot@m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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