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문예광장] (소설) 유목의 동선/ 김동혁

소설
소설 '유목의 동선' 이미지 사진. 언스플래쉬 제공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즈음 대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두어 시간 눈을 붙이고 물류센터로 출근을 합니다. 운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평일인데도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네 건이나 손님을 모셨고 퇴근길과 같은 동선으로 마지막 콜이 잡혔으니까요.

그는 두류역 인근 유흥가 이면도로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낡아빠진 1톤 트럭 앞에서 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인지 한 발 한 발 그에게 다가갈수록 저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 새벽 네 시에 물류센터 일을 시작한 후 저는 그때까지 한 번도 쉬지를 못했습니다. 네, 많이 피곤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를 알아본 건 칠곡까지는 할증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역시 저를 알아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리일을 할 때 늘 두툼한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그때 이 거래를 그만둘까 하는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오늘 벌이에 4만원을 더한다는 그 알량하고 초라한 셈속이 5년여의 세월을 덮어버리는 것을요.

저는 신천대로를 이용해 국우터널을 타겠다는 동선을 말하며 그의 동의를 구했습니다. 그는 말없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모로 꺾더군요. 아, 아닙니다. 그리 많이 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벌써 4년째 대리일을 하고 있어서 억병으로 취한 손님들은 단박에 알아보니까요. 차키를 돌리자 그의 트럭은 채찍을 맞은 늙은 말처럼 애처로운 발동음을 반복하더니 겨우 시동이 걸렸습니다.

수성교에서 신천대로로 진입하기 위해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람이 꽤 차가운 밤이었지만 악취 때문에 현기증이 날 것 같아 차창을 조금 열었습니다. 형사님도 보셨겠지만, 운전석 옆 컵홀더에는 담배꽁초가 산을 이룬 종이컵이 서너 개나 방치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먹다 내던진 삼각김밥이 벌레의 사체처럼 말라비틀어져 있더군요. 솔직히… 당장이라도 무릎을 흔들어 깨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네, 잘 압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저는 그냥… 그날 이후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조금 언성을 높여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뇨, 전혀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당연한 일 아닙니까. 몇 분 전에 직접 전화를 걸어 대리를 부른 사람이 게다가 도착 후에 수고했다는 인사까지 한 사람이 그렇게 차안에서 죽어버릴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형사님께서 의심스러워하시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의 핸드폰에 제 번호와 5년 전 제가 보낸 메시지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잘 믿기지는 않습니다. 네, 그에게 연락을 보낸 건 부적절한 행동이었습니다.

6년 전 저는 함바에서 주방일을 하던 아내를 만나 식도 올리지 않고 살림을 시작했죠. 둘이서 그간 모은 저축에 남들에게는 보잘 것 없을지도 모를 3500만원이라는 돈을 변통해 공단 인근에 트럭 기사들을 상대로 하는 밥집을 열었지요. 개업 전 식당용 대형 냉장고가 들어오던 날, 배송기사와 그 무거운 것을 옮기는데 뭐가 그리 가슴이 벅차든지 스테인리스 문고리가 찌그러지도록 손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새벽잠을 설쳤지만 그리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정식에 내놓을 시래깃국을 끓이며, 빚 다 갚으면 아이를 갖자고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물론 멀리서 들려오는 뉴스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에서 감염병이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공단 인근의 어떤 밥집에서 신경을 썼겠습니까?

감염병이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 저희 식당은 인근 물류회사와 외상거래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식사를 마친 기사들은 입구에 비치된 장부에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놓고 각자의 배송지로 향했지요. 그는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비슷한 또래인데도 식사를 마치면 늘 잘 먹었다는 인사를 깍듯하게 했죠. 마침내 일이 터지고 도시는 마비되다시피 했지만 물류가 멈춘 건 아니었습니다. 그날 새벽 그의 상태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식당에는 저와 그 둘뿐이었고 아내는 장사 준비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 쪽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 뉴스에서는 '슈퍼전파자'라고 했던가요? 하필 그가 슈퍼전파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는 도시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날랐고 사람들을 만나 서류에 사인을 받았고 또 어느 식당에서 값싼 정식을 사먹었겠지요.

이틀이 지난 후 그가 운신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물류회사의 부장이 식당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당장 장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닷새 전부터 그가 오지 않았다는 말이 생각보다 먼저 튀어나오더군요. 부장은 미심쩍은 듯 재차 확인했지만 저는 완강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저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사흘간의 장부를 찢어버리고 다시 명부를 작성했습니다. 손이 덜덜 떨려 글씨가 엉망이 되었다는 생각을 할 때, 저에게도 기묘한 열감이 밀려왔습니다. 삽시간에 인후통이 시작되었고 눈을 뜰 수도 없을 정도의 기침이 동반되었지요. 저는 서둘러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부상당한 늙은 곰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몇 번을 걸었지만 받지 않더군요. 할 수 없이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확진자의 동선까지 체크하고 만천하에 공개하던 시절이 아닙니까. 그것이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그 새벽, 그가 우리 식당에 온 사실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그래서 '저와 기사님만 알고 계십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희 식당만은 빼주십시오' 이렇게 보냈습니다.

저는 그대로 만 하루를 불도 켜지 않은 식당에서 버텼습니다. 물론 더 이상은 무리였습니다. 바이러스가 한창 기세를 올리던 시기가 아닙니까. 겁이 났습니다. 감염병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하루에 수십 명이 넘던 시기였으니까요. 모든 걸 포기하고 119에 전화를 걸려는 찰나 누군가 식당 문을 두드리더군요. 저는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시내 종합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방호복을 입은 공무원 앞에서 감추려고 했던 모든 사실을 다 털어 놓았습니다. 이미 공무원은 그가 식당을 다녀간 사실까지 알고 있더군요. 감염병의 위세가 마치 고문실에 끌려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 저희 식당이 유튜브에 올라가 버렸습니다. '함바 가게 사장의 부적절한 감염병 행태'였나? 그런 제목의 동영상이 식당 이름과 위치까지 낫낫이 공개된 채 올라온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유튜브에는 그 동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이었습니다. 저는 돌아왔지만 식당은 회생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염병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까지 모두 날려버렸지만 빚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빚과 저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솔직히 요즘은 그때보다 더, 안 좋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모습이요? 국우터널을 지날 때쯤 그가 자세를 고쳐 앉더군요. 그러고는 50사단 근처 도로가에 빈자리가 있으면 차를 세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갑을 꺼내 오만 원짜리 지폐를 건넸습니다. 제가 거스름돈을 꺼내려고 했더니 그가 '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도 저를 잠시간 바라보더군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인후통으로 목구멍이 꽉 막힌 것마냥 얕은 한숨만 비실비실 빠져나왔습니다. 돈을 받아 들고 운전석에서 내렸습니다. 차문을 닫으려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수고가 많습니다.' 저는 아무런 대꾸도 않고 그냥 조용히 차문을 닫았습니다. 마치 그때의 그 식당 사장이 나라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처럼…. 한밤의 호국로에는 들고양이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조수석에 앉아 있더군요. 저기서 다시 잠을 청하려나? 저대로 몇 시간 눈을 붙이고 나처럼 또 일을 나가는 건가? 저는 칠곡3지구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전 또 신새벽에 일을 나가야 했으니까요.

문득 멈춰선 저는 고개를 돌려 그의 트럭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저 주어도 받지 않을 만큼 낡아빠진 트럭이 마치 초원을 찾아다니는 유목민의 오래된 천막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그 안에서 홀로 세상을 떠나버렸는지도 모른 채로요. 돌이켜 보면 무엇 때문에 그가 죽어버린 것인지… 사실 저는, 알 것도 같습니다.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약력

저서: 소설집 '언터처블 내 인생'외 다수

경력: 문학박사, 현진건 문학상 입상,

단국대·계명대·경일대·울산과학대 출강

대구문예창작학원 원장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