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2) "나는 언제쯤 나를 살아도 될까요?" 돌봄의 굴레에 미래가 사라졌다

"타지역에 고등학교 진학을 꿈 꾸지만, 아픈 엄마가 마음에 걸려서 고민이에요"
미래계획에 어려움을 겪는 돌봄청년 36.7%…주돌봄자의 경우 46.8%로 더욱 높아
"연인을 만날 시간이 없어요…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것도 어려워요"

지난 3월 31일 방문한 대구 동구의 오래된 주택. 하시은(14·가명) 양은 성인이 발을 딛고 서 있기 어려운 좁은 방 한 칸에서 어머니와 함께 온종일 생활하고 있었다. 김지효 기자
지난 3월 31일 방문한 대구 동구의 오래된 주택. 하시은(14·가명) 양은 성인이 발을 딛고 서 있기 어려운 좁은 방 한 칸에서 어머니와 함께 온종일 생활하고 있었다. 김지효 기자

누군가는 오늘을 발판 삼아 차곡차곡 미래를 설계해 나간다. 학창 시절에는 꿈을 찾고 청년기에는 취업을 준비하며,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삶을 그린다.

반면 아픈 가족을 부양하며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인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에게 '내일'은 늘 뒷순위로 밀려난다. 돌봄의 끝이 어디쯤인지 가늠조차 어려운 현실에서, 이들은 미래를 상상하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 "제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지난달 21일 오후 2시쯤 찾은 대구 동구의 한 오래된 주택. 40년이 넘은 이 집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하시은(14·가명) 양은 다시 외출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어머니 이송희(48·가명) 씨의 정신과 진료와 정형외과 시술이 예정된 날여서다.

지난달 21일 오후 3시쯤 시은 양이 어머니 송희 씨와 함께 정형외과를 찾았다. 시은 양은 7살 무렵부터 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했다. 병원에 함께 가는 날이면, 시은 양은 어머니가 진료실에 들어간 짧은 순간을 제외하곤 내내 곁을 지켰다. 임재환 기자
지난달 21일 오후 3시쯤 시은 양이 어머니 송희 씨와 함께 정형외과를 찾았다. 시은 양은 7살 무렵부터 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했다. 병원에 함께 가는 날이면, 시은 양은 어머니가 진료실에 들어간 짧은 순간을 제외하곤 내내 곁을 지켰다. 임재환 기자

시은 양은 7살 무렵부터 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했다. 송희 씨는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집 밖으로 나돌았던 남편 때문에 우울증을 앓다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쳤다. 이후 약물 부작용으로 치매 증상까지 나타나면서 혼자선 외출이 어려운 상태다.

병원에 함께 가는 날이면, 시은 양은 어머니가 진료실에 들어간 짧은 순간을 제외하곤 내내 곁을 지켰다. 말동무가 돼 주고 건망증으로 자주 잊어버리는 송희 씨의 기억을 되살려 준다. 3시간 가까이 병원을 돌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하루가 다 지나간 기분이다.

"병원을 같이 가지 않을 때는 약국에 가서 엄마가 복용하는 약을 대리 처방받고 있어요. 엄마는 항상 아프다면서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이 드셔서 약이 항상 부족해요. 마약성 진통제도 있어서 약을 탈 때마다 약사 선생님께 눈치가 많이 보여요."

몸도 마음도 망가진 송희 씨는 항상 딸이 곁에 있어 주길 바란다. 그래서 시은 양의 휴대전화는 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울린다.

"수업하다가도 엄마가 전화 와서 '집에 좀 오면 안 되겠냐'고 하세요. 초등학교 때는 한 달에 4~5번 정도였고, 지금은 중학교 들어왔지만 2번씩은 부르는 것 같아요. 제가 없으면 엄마가 불안 증세를 보이세요."

시은 양이 어머니와 방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 김지효 기자
시은 양이 어머니와 방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 김지효 기자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시은 양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제과제빵사라는 꿈을 정했다. 아픈 엄마의 식사를 위해 부엌을 드나들면서 요리에 자신감이 생긴 것. 지난해에는 홈베이킹과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땄다. 고등학교도 제과제빵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경기도 시흥시 한국조리과학고로 정했다.

하지만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면 거주지를 옮겨야 하는데, 자신이 없으면 대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송희 씨가 마음에 걸린다.

"전 프랑스나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제과제빵을 더 배우려는 생각도 있어요. 그런데 엄마가 편찮으시니까 제가 설계한 미래를 그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미래 계획에 어려움을 겪는 돌봄청년은 36.7%로 3명 중 1명꼴이다. 시은 양처럼 홀로 가족을 부양하는 주돌봄자의 경우 46.8%로 더욱 높게 나타났다.

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꾸리지 못하는 이유로는 가족 돌봄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어서다. 시은 양은 평일에 하루 6시간, 주말에는 10시간 가까이 송희 씨를 돌보고 있다. 돌봄청년의 평균 돌봄시간이 주당 21.6시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시은 양은 두 배 이상 부담하는 셈이다.

시은 양이 지내는 방 안쪽에 위치한 좁은 샤워실. 집에 있는 유일한 샤워실이라 모든 가족이 매일 방 안을 지나 샤워를 하러 가면서 갈등에 부딪히기도 한다. 김지효 기자
시은 양이 지내는 방 안쪽에 위치한 좁은 샤워실. 집에 있는 유일한 샤워실이라 모든 가족이 매일 방 안을 지나 샤워를 하러 가면서 갈등에 부딪히기도 한다. 김지효 기자

최근에는 친인척이 시은 양의 꿈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제과제빵은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수입이 안정적인 '간호사'를 추천한 것. 아픈 어머니를 돌보려면 간호 계열이 더 낫다는 말까지 들었다.

"억지로 간호 관련 책을 사서 읽어봤는데 너무 괴로웠어요. 간호사가 제 꿈이 아니잖아요.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매일 들면서 억지로 하다가는 병이 날 것 같았어요. 미래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저를 둘러싼 환경은 아무래도 친구들과 차이가 큰 것 같아요."

◆"할머니 생각해서 아동학과 전공 포기했어요"

김가람(20·가명) 씨는 학교 교사와 관련된 전공을 택했지만 처음부터 꿈꾸던 진로는 아니었다. 중·고교 시절에 아동학과 진학을 희망하면서 수도권 대학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우리 손녀가 대구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한마디에 꿈을 포기하고 대구에 남았다.

가람 씨는 친할머니와 살고 있는 '조손 가정'이다. 기억 속에 할머니는 관절통으로 거동이 어려울 만큼 아픈 사람이었다. 수술까지 받게 되면서 시장이나 식당에서의 소일거리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지난 4월 25일 방문한 대구 동구의 한 빌라. 김가람(20·가명) 씨는 이곳에서 거동이 어려운 할머니를 돌보며 생활한다. 사진은 침대에 온종일 누워 있는 할머니의 모습. 김지효 기자
지난 4월 25일 방문한 대구 동구의 한 빌라. 김가람(20·가명) 씨는 이곳에서 거동이 어려운 할머니를 돌보며 생활한다. 사진은 침대에 온종일 누워 있는 할머니의 모습. 김지효 기자

생계를 책임졌던 할머니가 쓰러지면서 가람 씨는 곧장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결혼식 뷔페 아르바이트부터, 국가 근로장학생 등 소위 돈 좀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2년 전부터는 할머니가 뇌경련으로 일어날 수도 없게 됐다. 대소변을 가리는 일부터 씻기는 것까지 모두 가람 씨가 담당해야 했다.

입원 기간에는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할머니를 돌봤다. 지금도 마찬가지. 대학생이지만 학교 수업을 무단으로 결석하고 할머니를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가 잦다.

"저는 보살핌을 받기보다 항상 할머니를 돌보는 사람이었어요. 할머니가 병원에서 한글을 못 읽으시고 움직이시는 것도 어려워서 제가 곁에 있어야 해요. 진료가 끝나도 집에 보내드리고 나서야 다시 학교에 갈 수 있는데,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게 너무 벅차요."

할머니를 돌보느라 여느 또래처럼 대학 새내기를 누리지 못한 것도 아쉽지만 앞으로가 더욱 문제라는 가람 씨.

내년에 있을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해야 해서다. 공부에 전념하고 싶지만,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할머니가 방문 요양서비스를 받는 하루 2시간이 전부다. 이 시간이 끝나면 독서실에 있다가도 곧장 집으로 가야만 한다.

"하루에 40~50% 정도는 할머니 돌봄과 가사 부담에 짓눌리고 있는 것 같아요."

초록우산에 따르면 가람 씨와 같은 돌봄청년들은 제대로 된 개인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여가 시간이 '1시간 미만'이라는 응답이 6.5%, '1시간 이상 ~ 2시간 미만'은 18.8%로 집계됐다. 4명 중 한 명은 하루 2시간의 여유도 갖지 못하고 있다.

가람 씨가 자신의 방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 김지효 기자
가람 씨가 자신의 방 안에서 생활하는 모습. 김지효 기자

돌봄에 많은 시간을 쏟다 보니 사랑을 할 여유도 없었다. 최근에는 남자친구와도 이별을 하게 됐다.

"만날 시간이 없었어요. 할머니 돌보는 것만 해도 힘들어요. 결혼은 돈과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할머니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커요."

앞으로 이 돌봄의 굴레가 얼마나 이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 막막하다. 병원 일정과 가사 부담까지 모두 짊어진 상황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다.

"내년 11월에 임용시험이에요. 할머니가 병원을 오갈 때, 저 대신 도와줄 사람만 있어도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전혀 안 돼요."

[들리지 않는 SOS, 가족을 짊어진 아이들] 연재 순서

1편_부양 떠안은 어린 가장
2편_돌봄 굴레 속 사라진 꿈
3편_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린 청소년
4편_촘촘한 지원과 든든한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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