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채성준] 광복 80주년, 제국주의 유산을 넘어 세계의 주역으로

서경대 군사학과장, 안보전략연구소장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채성준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오는 8월 15일은 대한민국 광복 80주년 기념일이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지 두 세대를 훌쩍 넘어섰지만, 우리 앞에는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한반도는 민족 분단과 함께 남북 간 군사적 대치가 계속되고 있으며, 세계 곳곳에서도 19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 침탈 과정에서 생겨난 국경과 민족 분할의 부정적 유산으로 인해 분쟁과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식민 통치와 경계 설정 실패가 낳은 중동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다. 서로 다른 민족과 종교가 뒤섞인 지역에 무리하게 경계를 긋고 권력을 분할시킨 결과, 오늘날까지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르완다, 서사하라, 수단과 남수단,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와 보코하람, 콩고민주공화국과 이웃 등 도처에서 유럽 식민 열강에 의한 불합리한 분할 통치로 민족과 종교가 뒤얽혀 내전과 대량 학살의 참극이 반복되고 있다.

아시아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불거진 미얀마의 로힝야족 문제, 인도와 파키스탄의 종교 기반 분할과 그로 인한 카슈미르 분쟁, 프랑스 식민지 시절 불분명하게 그어진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선 갈등은 모두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처럼 제국주의가 남긴 후유증은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며, 오늘날까지 인류 전체에 상처를 남기고 고통을 주고 있다.

한반도 분단 역시 20세기 국제정치의 산물이라지만 그 근원을 따져보면 제국주의와 맞닿아 있다. 제국주의 후발 주자인 일제 식민 지배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2차대전 승전국이던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통치했고,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분단이 고착화된 것이다.

그 결과 남북한은 각기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다른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이념 대립과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분단은 우리 민족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된 '외부의 경계'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특히 무거운 역사적 숙제를 남겼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1948년 8월 15일 민주 정부를 수립한 이후 국민의 땀과 열정, 희생을 바탕으로 눈부신 성취를 이룩했다. 제국주의의 희생양이던 신생 독립국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드문 경우에 속할 뿐 아니라,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치르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던 나라에서 이른바 '5030클럽'(인구 5천만 명,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 이상인 전 세계 7개국)의 일원으로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기적을 일궈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게 아니라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첫째, 진정한 해방은 단순히 독립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주와 내부 통합, 그리고 균형 잡힌 외교와 국제 협력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지속적 실천'임을 알아야 한다.

둘째, 분단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독일 통일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지나친 환상보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지니고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을 차근차근 치워나가야 한다.

셋째, 제국주의는 과거에 끝난 문제가 아니다. 경제·문화·외교적 종속과 영향력 행사로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반도라는 지정학적 특성과 함께 주변 강국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은 이를 항상 경계하면서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해야 한다.

넷째, 제국주의의 유산인 유무형의 경계에 예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체적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미래는 외부 세력이 아니라 온전히 우리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

광복 80주년은 과거를 기억하는 날을 넘어 미래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최근 여러 경제·사회 지표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서고 있다. 2024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한국 3만6024달러, 일본 3만2476달러)이나 가계 순자산(한국 18만5천달러, 일본 18만달러)이 이를 증명한다. 식민 지배를 당한 나라가 식민 지배한 나라를 당당히 뛰어넘은 셈이다.

더 이상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면서 우리끼리 다툴 필요가 없으며, 가해자에 대해서도 승자의 아량과 여유를 보여야 한다. 제국주의가 만든 굴레를 과감히 떨쳐 버리고 세계 무대의 주역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지녀야 할 때다. 우리 국민에게는 그만한 저력이 있다.

채성준 서경대 군사학과장, 안보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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