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유령' 지역 업체

박상전 대구권본부장 겸 경산담당
박상전 대구권본부장 겸 경산담당

행정안전부 '지방 계약제도 운용 실태 점검 결과' 등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4년간 지역 업체 하청 비율은 지자체별로 15%에서 많아야 25% 수준이다. 평균 30% 이상(일부 지자체는 50% 이상)을 지역 업체가 수주해야 한다는 지역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각에서는 지역업체의 기술력이나 자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하도급 확대에 한계성을 지적한다.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는 지나친 지역업체 하청률 상향 의무화는 공사비 증가로 인한 공공사업비 폭증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국토교통부 일각에서도 예산의 역내 선순환 구조가 먼저라며 하청률 높이기에는 소극적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공 건설사업에서 지역업체 하청률을 높이는 문제는 단순히 계약 비율상의 문제가 아니다. 예산의 역외 유출은 지방 경제 기반을 약화하는 주요 원인임이 분명하다. 지자체가 어렵게 확보한 예산으로 추진한 공공사업임에도 대부분의 공사비가 수도권 업체로 흘러간다면, 지역업체는 명함만 올리고 실익 없는 '유령' 하도급으로 전락하는 악순환 고리가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지역업체 참여 확대는 경제 효과를 넘어 사회적 의미도 크다. 지역 내 건설사들이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해야 기술력을 축적하고,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이것은 또다시 지역 인구 유출을 막는 버팀목으로 선순환 작용한다. 특히 지방 소멸 위기에 처한 군 단위 지자체일수록 공공사업의 지역 잔존 효과는 정책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된다. 지역업체 하청률을 높이는 일은 중앙-지방 간 격차 해소,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목표와 맞닿아 있다.

지역업체 보호 정책을 경제 생태계를 왜곡하는 시장 개입으로 바라봐서도 안 될 일이다. 수도권 쏠림으로 인한 지방 경제의 붕괴 위험성을 고려할 때, 더 이상 방관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발주기관, 감리업체가 함께 참여율 지표를 공개하고 평가·보상체계를 연동한다면, 정책의 실효성은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지역업체 하청률 제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발전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다. 지역 업체의 구조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공사 발주의 수혜는 관내 업체가 철저히 누려야 한다. 일정 규모 미만의 공사는 지역 제한 입찰로 돌리고, 대형 사업도 지역업체 공동도급 비율을 의무화하는 등 과감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계약서상으로만 지역업체가 참여한 것처럼 꾸미는 폐단은, ▷표준하도급계약서 적용 ▷전자투찰 이후의 현장 모니터링 강화 ▷위반 시 페널티 부여 등의 강력한 장치로 보완하면 된다.

경제·외교 문제에 있어 현 정부의 기조는 '실리'다. 중국에 '셰셰'하고 일본에 '아리가또' 하더라도 우리에게 실익이 있으면 기꺼이 한다고 했다. 지역 업체 하청률 제고는 중앙과 지방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단초이다. 미뤄서도 안 되고 경제 논리만 들이대서도 곤란하다. 대통령은 경제 고통으로 죽어나가는 서민들의 안타까움을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다.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혹한기를 맞고 있는 지방 경제는 더욱 심각하다. 관내 사업만이라도 해당 지역 업체가 모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정책, 실익을 중요하시 하는 현 정부가 지방 경제를 즉각적으로 살릴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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