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이용호] 제국주의(帝國主義)의 부활(復活)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지난달 3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이 양자 회담을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 일정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곧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것이다. 당연히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가 어떤 추가적 요구를 할 것인지에 큰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의 트럼프 언행에 비추어, 그가 이 대통령에게 '안보 청구서'를 내밀 것으로 예상된다.

제2기 트럼프 정부의 동북아 전략은 '신(新)애치슨 라인'(일명 '트럼프 라인')을 한 축으로 한다. 미국의 극동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시킴으로써 한국전쟁의 단초를 제공하였던 '애치슨 라인'(1950년 1월)의 새로운 버전(version)인 셈이다. 이것은 대한민국과 타이완에 대한 방위를 한발 물러선 채 필요한 최소한의 개입만 하겠다는 것으로서, 결국 양국이 각자 자국의 방위를 책임지라는 의미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북 억지에서 중국 대응 중심으로 재조정하겠다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이 '한미동맹의 현대화'라는 미명(美名)으로 덧씌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 건네질 '안보 청구서'에는 주한미군 감축, 주둔 분담금 확대, 한국의 자체 방위비 증액 및 타이완 유사시 한국의 적극적 역할 등 동맹의 책무를 주문할 것으로 예측된다. 만약 한국이 대(對)중국 견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방위선을 일본으로 동진(東進)시켜 한국 방위를 포기할 수 있다는 협박을 노골적으로 하면서 말이다. 따라서 한국은 스스로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또 다른 시급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

트럼프의 안보 관련 주문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맹국들도 하나같이 안보 몸살을 앓고 있다. 기준도 없이 관세율을 제멋대로 높이는 등 관세 협상에서 보여 준 트럼프 방식의 의사 결정이 안보 협상에서도 그대로 차용된다면, 군사 약소국은 '무심코 던진 짱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은 스스로 생존 전략을 찾아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된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오늘날의 세계는 양차 세계대전,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상황과 유사하다. 국가주의가 득세하고, 군사동맹 체제가 강화되며, 패권국가와 신흥 강대국 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세계가 군비경쟁 시대로 재진입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국·프랑스와 독일 간 갈등의 그림자를 작금의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 강대국 사이에서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지난 80년 동안 국제 평화와 안전의 방파제로서 작동해 온 유엔헌장상의 국제법 질서가 붕괴된다면, 그 결과는 우월한 군사력과 경제력에 기반한 '힘의 지배' 시대, 즉 제국주의 시대로의 회귀를 가리킨다. 특히 최근의 핵무기에 대한 지나친 관용은 지구의 종말로 가까이 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징후이다. 그만큼 평화와 안전은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의 폭주는 일회성이 아니며, 향후 모든 강대국들도 자국 중심주의를 외쳐 댈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 최후는 아마겟돈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국제질서, 제국주의의 부활은 꼭 막아야 한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인의 절대적 책무이자 권리이다. 그래서 세계인은 깨어 있어야 한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민도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와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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