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의 폭염은 참으로 신기했다. 태풍도 없었고 열기로 가득하기만 했다. 나는 더위 때문에 몇 번이나 질식사의 공포에 휘감겼다. 가을이 올까 싶었다. 단군 이래 첫 '열대민국 한국'의 변곡점인 것 같았다. 그런데 기우였다. 어김없이 귀뚜라미가 울고 삽상한 달빛과 교교한 달빛이 흘러내렸다. 하늘의 취흥과 취기는 단풍과 낙엽으로 잘 구동되었다. 11월의 정수리, 애국가 3절에 등장하는 그 '공활한' 가을하늘이 새삼스럽게 귀환했다. 나도 모르게 커피 한 잔을 음미하면서 기립박수를 쳤다. 며칠간 먹음직스러운 가을의 미로(味路)를 좇았다.
◆가을 프롤로그
반나절 이상 멍하니 하늘만 응시했다. 저 아련한 심조(心調). 그걸 재단할 수 있는 언어가 내 흉중에는 없었다. 그래도 글쟁인데? 유구무언이고 대략난감한 기분이었다. 저러한 하늘 탓에 11월1일이 '시의 날'이 됐던가.
가을엔 모두 '시인'이다. 낙엽비 속의 발자국, 그 자체도 절창의 한 편의 시다. 가을시의 절창은 누굴까. 몇몇 시인한테 물어봤다. 그렇게 해서 김천 출신 시조시인 백수 정완영의 '가을은'과 '감을 따 내리며'를 음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시를 소개해 본다.
저렇게 푸른 하늘이 어디에다 가마 걸고/ 이렇게 붉은 열매를 주저리로 구워 내렸나/ 아흔 해 이 땅에 살아도 가마터를 나는 몰라(전문)
시를 딛고 추억의 유행가로 건너가 본다. 예전 추억의 그 극장들, 서부, 부민, 시민, 달성 ,대도, 신도, 사보이, 오스카…. 막간에 흘러 나오는 치지직 그리는 그 유행가. 요즘은 좀처럼 영접하기 힘들다. 그때 그 노래들은 요즘보다 '소울'(Soul)이 짙다. 요즘은 너무 가창력에 기댄다. 그땐 다들 자기만의 맛이 있었다. 지금은 꾸민 감정(필)이 활개를 친다. 예술이 아니라 기술 같다. 'K-POP'의 오늘을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니 곡해 마시라.
◆아련한 B급 정서
아무튼 나는 예전 B급 그 빛바랜 정서가 좋다. 그래서 찾아낸 가수가 있다. 정원의 '허무한 마음'이다. 대구 출신인 그는 이 한 곡으로 '뜨거운 안녕'을 부른 쟈니리와 함께 1960년대 국내 극장쇼를 장악한다. 그리고 신성일과 경북고 동기동창인 손시향, 그도 '청포도 사랑'의 도미(계성고), '빨간구두아가씨'의 남일해(대건고)와 함께 대구 출신의 전국구 가수다. 젊은 세대한테는 다소 올드할 지 모르겠지만 손시향의 명곡 '검은장갑'과 '이별의 종착역', 이 가을에 듣기 더없이 좋다. 더불어 이영숙의 '가을이 오기 전에'도 울림을 증폭시킨다. 그 뒤에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람', 박광수 버전의 '마른잎', 송창식의 '날이갈수록', 장현의 '미련' 등은 그 시절 가을 노래의 절창이었다. 급기야 김민기의 '가을편지',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을 만나면 '낙엽 엘레지'의 대미를 장식한다. 마지막 한영애의 '가을시선'에 이르면 가을의 정서는 탈속하며 시크한 파워를 얻게 된다.
◆바바리코트 신사
언젠가부터 추억의 '바바리코트 신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렇다 할 문학청년과 음악다방도 거의 종멸된 것 같고. 그래도 위안을 주는 라이브 공간이 좀 있다. 계산성당 근처 카페 '쎄라비', 방천시장 '나발', '길영LP카페 ', 김윤동 DJ와 동행하는 '낭만포차', 라이브온, 수성교 근처 '시카고', 상인동 '바운스' 등이 있어 가을이 덜 삭막하다. 가창 최정산 정상부에 자리를 잡은 목장라이브 '파크700'도 로컬 통기타 동호인들의 캠프로 거듭나고 있다. 지역의 기타리스트 백광범이 부르는 정미조의 '개여울'은 이 계절에 딱이다.
◆단풍과 낙엽 사이
언젠가부터 도심 곳곳에 '은행나무 로드'가 만추를 자극한다. 대명9동 카페거리에도 있고 백안삼거리 근처 길거리도 노란 함성을 질러댄다. 청도의 운문사와 대전리의 은행나무, 그리고 고령군 다산면 '고령은행나무길'이 최근 핫플로 등극했다. 1.2km 구간이 코스모스 존과 앙상블을 이룬다. 다른 곳보다 물이 늦게 드니 지금쯤 가보면 좋을 듯 싶다. 하지만 너무 푸짐한 노랑의 무게가 조금 식상하기도 하다. 저 노랑은 달렸을 때보다 추락할 때 더욱 매혹적이다. 느티나무와 벚나무 단풍은 서둘러 졌다. 후반부를 팔공산 순환도로 홍단풍이 대미를 장식한다. 참고로 앞산 안지랑계곡 초입의 숲이 다양한 노랑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홍단풍의 브라이어티는 달서구 상인동 임휴사 초입이 제일인 것 같다.
봄꽃은 열매를 남기고 마지막 자신의 흡광판(吸光板)을 말끔히 덜어낸다. 겨울에는 그게 무용지물인 탓이다. 그리고 비로소 펼쳐진 천의무봉의 저 하늘은 가슴에 방점을 찍어준다. 넓이와 깊이가 합일된 가을하늘 때문이다. 저 물성은 분석 불가이다. 인문학을 초토화시킨다. 굳이 베이커리카페에서 허세와 허영을 끄집어낼 필요도 없다.
가장 멀어진 것들이 눈썹 밑이거나 손금 아래로 소환하는 저 하늘. 그래서 나도 '가을나그네'를 자청한 것이다.
대구미술관에 가면 팔공산의 고즈넉한 모습을 제대로 조감할 수가 있다. 그리고 대구 간송미술관 옆 느티나무길에서 만추의 일단을 친견할 수 있었다.
낙엽의 길과 단풍의 길은 다르다. 다 같이 하구에 다다른 물길이지만. 단풍은 자기주장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람결에 끌려다니는 낙엽은 체념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단풍족은 여행길을 즐기지만 낙엽족은 아니다. 저승 가는 차를 환승객처럼 기다린다.
초록으로 탱탱하던 봄날에는 분출의 기운밖에 없다. 초록이 거의 동색이다. 명암도 채도도 엇비슷하다. 마치 손주의 재롱같다. 그즈음 유치원생이 되면 모두 제 손주가 천재인 줄 착각하는 것과 진배없다. 하지만 중고 시절만 되면 제 손주 자랑하는 사람이 없다.
◆할매 & 가을여인
손주 태우던 그 유모차. 그걸 개똥벌레처럼 끌고 가는 대한민국 할매들. 자꾸 낙엽과 오버랩 된다. 봄날에는 특별한 인생이 있겠다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을녁을 지나갈 땐 생각을 내려놓는다. 이 집구석 저 집구석, 살아가는 형용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숱한 인맥을 운운하다가 결국 가족 곁에서 낙엽처럼 고단한 여정을 마친다. 경전을 운운하고 세상이 평화 등등을 구가하다가 어느 날부터 일절 입을 다문다.
그런 가을이기에 다들 '조락미'(凋落美)를 경청할 수밖에 없다. 배우자의 손을 잡고 준비해 온 커피와 빵을 곁들여 지나온 여정을 소담스럽게 다독이는데 좋은 장소가 몇 군데 있다. 신천 대봉교 근처 쿠션파크, 그리고 달서구 도원동 월광수변공원 데크길과 테이블존이 각별하다.
◆페달 위의 가을
나는 은퇴 후 프리랜서의 삶을 위해 승용차를 버렸다. 부실한 하체의 근력증강을 위해 자전거를 선택했다. 대구 도심의 속살을 헤집고 보기에 딱이었다. 신천 둔치 자전거길이 나의 벗이기도하다. 거기서 다양한 '낙엽족'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 아니다. 무료하고 적적하고 외롭고 심심한 것이다. 말벗이 그리워 거기로 출근한다. 비슷한 인생길, 동행자로서의 온기가 그리운 것이다. 해가 지면 새처럼 그들도 제 둥지로 날아간다. 이 무렵 레깅스 차림의 쭉쭉빵빵 여인과 근육질 남성의 '조깅 카니발'이 벌어진다. 그들이 사라지면 이래 저래 고독할 수밖에 없는 자들의 걸음이 등장한다.
다행히 낙엽은 환경미화원 덕분에 떨어지기 무섭게 치워진다. 항상 말끔한 거리. 그 낙엽의 종착지는 어딜까. 낙엽은 다음 해 푸릇한 이파리를 위한 거름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나무들에게는 저승이 곧 이승인 것 같다. 우리 인생도 그럴까? 어떤 이들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 하는데, 나는 아닌 것 같다. 각기 다른 형편의 부모 밑에서 태어난다. 죽을 때도 각기 다른 재산을 자식한테 남기고 간다. 그 말은 초근목피로 살아야만 했던, 너나없이 '빈손'이었던 그 농경사회의 '유물'(遺物)일 것 같다. 낙엽의 인생이 되레 공수래 공수거 아닌가. 아무튼, 2025년표 단풍 사진과 커피 한 잔을 드리고 싶다. 땡큐, 딥 블루 스카이(Deep blue sky)!
wind30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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