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왜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가.'
『365번째 편지』(이정서재 펴냄)는 4가지 색깔의 사랑을 담은 조두진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4편의 중·단편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이 어떤 사랑을 꿈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치카〉는 너무나 사랑했기에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남자의 긴 침묵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랜 세월 찾고 기다려온 사랑을 먼 곳에 두고, 밋밋한 사람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무표정하게 살아간 그는 어떤 세상을 보았을까.
남자는 "내가 만일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사랑했더라면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어요"라고 말한다. 이 사랑의 '역설'을 통해 독자는 자신이 갈망하는 사랑의 색깔을 짐작할 수 있다.
〈365번째 편지〉는 상대방을 처음 본 순간 내가 오랫동안 찾고 기다려온 사랑임을 알아보았는데, 상대방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야기이다. '우리 서로 사랑임'을 상대방이 알아봐주기를 기다리는 남자와, 돌아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의 시선이 교차한다.
소설은 독자들에게 묻는다.
내가 첫눈에 반한 사람, 그러니까 내가 오랜 세월 찾고 기다려온 사람인데,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바로 내가 긴 세월 찾고 기다려온 사람이에요"라고 상대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꺼내는 것은 사랑일까.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가 여러 번 설명하니 어렴풋이 '사랑'임을 알아보게 되는 것은 사랑일까.
〈리에의 사랑〉은 사랑을 묻어 버린 여자가, 결국은 그 흙더미에 자신이 묻혀버린 이야기이다. 넘실대던 푸른 강물은 말라버리고, 허연 강바닥이 드러난 강가에서 리에는 말한다.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 따위는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내가 사랑을 묻어버린 것은 결코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차라리 사랑이 부족해서 그 사랑을 묻었더라면 이처럼 야윈 몸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못생긴 여자〉는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 아름다웠던 사람이 어째서 못생긴 사람이 되어버리는가, 묻는다. 여기서 못생긴 여자는 얼굴이 못생겼다는 말이 아니다. 감정의 변질로 아름다웠던 추억마저 훼손되어버리는 이야기이다.
흰 눈 속에서 붉은 떡볶이를 함께 먹고, 아무도 없는 눈 쌓인 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둘 만의 발자국을 남기던 그 끼끗했던 순간들이 어째서 마치 "못생긴 연인들이 입 맞추는 모습"처럼 느껴지는지 그 까닭을 몰라서 난처하고 고통스러운 사람의 이야기이다.
『365번째 편지』(이정서재 펴냄)는 사랑에 관한 4가지 이야기를 통해 "당신에게 사랑은 무엇인가요?" 묻는 소설이다. 장편소설 〈도모유키〉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고, 400년 전 '원이엄마'의 편지를 소재로 쓴 〈능소화〉를 비롯해 〈마라토너의 흡연〉 〈아버지의 오토바이〉 〈결혼면허〉 〈북성로의 밤〉 〈미인1941〉 등을 쓴 조두진의 연작 소설집이다.
211쪽, 1만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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