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벌써 3년 6개월을 넘겼다. 우크라이나의 전 국토가 전쟁터로 변했고, 주요 기간시설이 파괴되었으며, 군인 약 10만6천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고, 38만 명이 다쳤다. 민간인 약 5만 명도 사망 또는 실종되었다. 아울러 1천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주변국을 떠돌고 있다. 전쟁으로 무고(無辜)한 우크라이나인(人)이 이유 없이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널의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듯하지만,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仲裁)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히려 트럼프와의 힘자랑에 몰두하는 모양새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의 끝은 점령된 우크라이나 영토의 처리와 향후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이라는 두 가지 사안의 시소(seesaw) 협상에 달려 있다.
이대로라면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의 약 9%(5만3천201㎢)에 해당하는 돈바스(Donbass) 지역 전체를 잃고도, 자국의 안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궁지에 몰릴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은 힘이 없어서 생긴 일이다. 약 4천100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흘리는 피눈물이 흑해로 모여들고 있다. 친(親)서방 정권과 친(親)러시아 정권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며 분열되었던 지난 시절을 후회해도 소용없다. 1994년 12월 미국, 러시아, 영국 등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을 보장했던 '부다페스트 각서'를 준수하라고 아우성쳐도 무용지물이다. 세계 3대 핵무기 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자국이 보유했던 모든 핵무기를 스스로 폐기 내지 이전하기로 합의한 '리스본(Lisbon) 의정서(1992년)'를 자책해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극심한 고통과 폐허 속에서, 우크라이나인이 뼈저리게 후회하는 패착(敗着)은 약속을 믿고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했던 일로, 아마 잊히지 않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假定)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만약 우크라이나가 그 많았던 핵무기 가운데 일부만이라도 지켰더라면, '흑해로 모여드는 우크라이나인의 피눈물'이라는 수사(修辭)는 필요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제국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듯한 21세기의 신(新)국제질서 앞에서, 힘이 없으면 스스로 평화를 지킬 수 없음을 우크라이나가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최근 백악관이 공개한 '힘을 통한 평화'라는 제목의 한 장의 사진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와 유럽 정상 간의 비공개 다자회담 장면으로, 트럼프는 자기 책상 앞에 여유 있게 앉아 있고, 유럽 정상들은 트럼프를 마주보며 책상 없는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는데, 약육강식의 신국제질서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icon)이 되고 말았다.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유럽에 대한 행태가 이러한데 하물며…. 힘이 없으면 침략당하거나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을 감내하며 후일을 기약하는 것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은 최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력을 키워 일등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표방하면서, 가장 고민되는 일이 국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의 피눈물이 다시 낙동강을 붉게 물들여서는 안 된다. 이는 국민이 발하는 절대적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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