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전세계를 휩쓴, 뜨거운 여름이었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서 오히려 외면 받았던 전통 상징물들은 현대 콘텐츠에서 다시 살아나며 세계적인 문화 코드가 됐다.
전통 문화를 기반으로 한 케데헌 신드롬은 문화유산이 가득한 박물관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올 1월부터 지난달 20일까지 집계된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 수는 407만3천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배 늘었으며, 뮷즈(뮤지엄+굿즈·박물관 상품) 역시 지속적으로 완판되는 등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열풍 속 출간된 책 '전통 미술의 상징 코드'는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케데헌의 더피(호랑이), 서씨(까치) 캐릭터의 모델이 된 호작도(신재현, 19세기 말~20세기 초)가 장식하고 있어서다.
저자 허균은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편수연구원, 우리문화연구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KBS 'TV쇼 진품명품' 자문위원 등을 역임한 전통 미술 전문가다. 현재 한국민화학회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은 제목인 전통 미술의 상징 코드를 통해 길상(吉祥)과 벽사(辟邪), 삶과 죽음 등을 대하는 전통의 지혜를 풀어내며, 오늘날 우리 삶에서도 여전히 이어지는 상징의 문화적 힘을 보여준다.
옛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쁜 기운과 귀신이 삶을 위협한다고 믿었다. 이를 막고 복(福)을 불러들이기 위해 궁궐과 절, 서민들의 집안까지 다양한 상징적 장치가 곳곳에 자리했다.
대문에는 호랑이나 문신(門神)을 그린 문배 그림을 붙였고, 절의 법당은 무서운 얼굴의 귀면 기와로 지붕을 장식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마을 수호신당에는 솔가지와 붉은 고추, 숯을 꿰어 만든 금줄을 걸어 잡귀의 출입을 막았다. 왕릉에는 돌로 만든 석수(石獸)가 서서 망자의 안식을 지켰다. 그림과 조형물, 건축물 등 삶을 둘러싼 모든 공간에 동원된 이 상징들은 재앙을 막고 복을 불러들이고자 하는 길상, 벽사의 장치였다.
특히 길상은 단순한 미신이나 장식이 아니라, 인간의 바람직한 행실과도 맞닿아 있었다. 효(孝)·충(忠)·예(禮)·신(信)·의(義)와 같은 덕목을 문자 그림으로 담아낸 윤리문자도 병풍이 대표적이다.
윤리문자도는 해당 덕목과 관련된 고사(故事)의 기물이나 동식물 등을 그려 넣은 점이 흥미로운데, 효자도에서는 고대 효행담에 나오는 잉어, 죽순, 부채, 거문고 등의 상징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호작도는 어떤 상징이었을까. 책은 맹수를 그린 그림의 경우, 그의 용맹성과 신령한 힘을 빌려 재앙과 역병 등을 물리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얘기한다. 사악한 것을 몰아내고 행복과 무탈함을 빌고자 한 소망을 호랑이와 까치를 통해 나타낸 것.
이외에도 책은 케데헌에서 주인공들이 쫓는 '데몬', 즉 귀(鬼)에 대한 얘기도 들려준다. 귀신은 전통적으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양가적 존재여서, 두려워하면서도 삶에 깊이 관여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무덤 앞에 악귀를 쫓기 위해 귀신의 얼굴, 귀면(鬼面)을 새겼다는 구절을 읽을 때쯤에는, 귀신을 잡는 헌터이자 그 자신이 귀신인 케데헌 주인공 루미가 떠올랐다.
이처럼 책 속에는 봉황과 용, 십이지신, 심지어 해와 달, 별까지 삶의 안녕과 행복을 빌었던 다양한 상징 코드들에 대한 설명이 펼쳐진다. 다소 전문적이고 학문적이지만, 들어가는 글에 밝힌 저자의 '진심'을 이해한다면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테다.
"유형의 뒤편에 숨은 이무형적, 인문적 요소들을 우리가 깊이 살피고 이해할 때 비로소 전통 건축과 조형미술의 진면목, 우리 문화의 정체성은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296쪽, 2만2천원.
댓글 많은 뉴스
"전한길에 '폴더 인사' 중진들"…국힘 초선들 '자괴감' 토로
李 대통령 지지율 70% 육박…'여론조사꽃' 조사결과
李대통령 "고신용자 부담으로 저신용자 싸게 빌려주면 안 되나"
나경원·한동훈 "손현보 목사 구속 지나쳐, 종교 탄압 위험 수위 넘어"
대통령실 결단에 달린 'TK신공항 자금난'…대구시 '新 자금 계획' 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