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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옛 별명 [가스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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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얼마 전 톈안먼(天安門) 망루 위에 시진핑과 푸틴, 김정은 세 남자가 섰다. 소련 붕괴 이후 공산 세력의 연대를 이토록 노골적으로 상징하는 사건은 없었다. 권위는 불안할 때 가장 소란스럽다. 세 남자는 가장 큰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가장 극적인 무대를 올렸다.

국제정치학적으로 이들의 회담은 강력한 자유 세력과 균형을 맞추려는 독재 세력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내는 더 복잡하다. 시진핑은 둔화된 성장, 푸틴은 전쟁의 피로, 김정은은 균열 난 체제 때문에 권위가 사정 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를 감추기 위해 그들은 더욱 엄격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 쇼는 당장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했다.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정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중립'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앞에서 고개를 숙였고 우원식 국회의장과 박지원 의원은 중국으로 날아가 몸을 낮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 문재인 전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의 연장이었다.

문제는 세계가 여기에 '땡큐', 저기에 '셰셰'를 남발하는 나라를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처럼 과격한 협상가에게 속내가 훤히 보이는 중립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우리는 정답을 알면서도 애매한 태도만 취하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 달랐다. 공산주의 등장과 동시에 맹렬한 반공주의자로 살았던 그는 친미주의자로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자유주의자였다. 자유동맹이 약화 될 것 같으면 미국에 칼을 들이대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1954년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 초청 받아 연설한 자리에서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공산주의 침략에 맞선 미국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동시에 미국을 당황케 했다. '중공'을 한반도와 아시아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해서였다. 친미였다는 일부 평가와는 달리 그는 미국이 가장 불편해 했던 사람이었다. 이 불편함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냈다.

일본·대만·필리핀으로 이어지는 해양 방어선이 무너지면 한국은 섬이 된다. 그게 한국의 지정학적 운명이다. 인도-태평양 동맹을 생명선이라고 부르는 건 다른 게 아니다. 한국이 붙잡아야 할 건 '지역 운전자' 핸들이 아니다. 자유 진영의 끈이다.

바다와 육지의 싸움은 인류사를 관통한다. 바다의 아테네와 육지의 스파르타, 바다의 영국과 대륙의 나치 독일, 바다의 미국과 대륙의 소련, 장소는 매번 달라졌으나 구도는 같았다. 한반도는 반만 년 간 대륙 세력의 끄트머리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반도를 '대륙의 변방'에서 '바다의 최전선'으로 돌려 세웠다. 그 선택이 국가의 운명을 바꿨다. 예전 우리의 별명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별명은 '자유의 파도'였다.

정태민 프리드먼연구원 선임연구원

정태민 프리드먼연구원 선임연구원
정태민 프리드먼연구원 선임연구원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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