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감사하기로 했다고 한다. 광복회가 김 관장 해임을 촉구하는 '국민감사 청구'를 보훈부에 내고, 보훈부가 이를 감사원에 전달했으나 감사원이 자료가 미비하다며 보완하라고 돌려보냈지만 광복회가 감사 청구서를 다시 내지 않자 보훈부가 직접 나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해임 절차의 시작"이라고 한다. 김 관장이 "광복은 연합국 승리의 선물"이라고 한 데 대해 여당 원내대표가 "매국노" 운운하고 광복회가 김 관장의 해임을 촉구하는 '국민감사 청구'를 보훈부에 내고 보훈부가 이를 감사원에 전달하면서 "적극 검토해 달라"고 했을 때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기자는 김 관장에 대한 여당과 광복회의 '매국노' 공격이 얼마나 '픽션'인지를 지난달 25일 자 '김구도 매국노가 되는 사문난적(斯文亂賊) 몰이의 광기'라는 칼럼에서 짚어 본 바 있다. 여기서 광복이 연합국의 선물임은 김구는 물론 남한 좌익의 박헌영까지 인정했다고 소개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북한 김일성도 같은 생각이었음을 추가한다.
소련의 후원으로 권력을 잡아 가던 김일성은 1945년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조선공산당 서북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열었다. 대회 첫날, 훗날 김일성에게 숙청된 오기섭이 김일성 일파와 대립하고 있던 '장안파'(박헌영의 조선공산당과 별개의 공산당으로, 서울 종로구 장안빌딩에서 창립됐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장안파가 해방에 대한 연합국의 공헌을 인정하지 않는 '좌경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김일성도 대회 마지막 날 연설에서 "사회주의 국가 소련과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 함께 들어와 조선을 해방해 주었다"고 했다.(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로버트 스칼라피노·이정식)
여당의 김 관장 공격에 광복회도 가세했다. 한술 더 떠 프랑스까지 끌어들여 광복이 독립투쟁의 산물이라고 강변한다. "연합국은 노르망디상륙작전을 통해 승리의 고삐를 잡았습니다. 프랑스는 이를 드골 리드하에 프랑스인들의 불굴의 투쟁의 결과로 기록합니다. 세계인들도 그렇게 인정합니다."(광복회가 보훈부에 보낸 '국민감사 청구')
헛소리다. 자유 프랑스 지도자 드골은 2차 대전 전후 처리를 위한 얄타회담에 초대받지 못했다. 프랑스가 2차 대전 승리에 기여(寄與)한 게 없기 때문이다. 1944년 6월 6일 D-day에 노르망디 해변에서 싸운 프랑스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작전 계획 회의에 드골은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국·영국·소련은 승전국 지위를 달라는 드골의 '땡깡'을 받아 줬다. '프랑스인들의 불굴의 투쟁'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계산에서였다. "소련은 영미에 대한 불신을 공유할 전술적 동맹국을 원했고, 영국은 되살아난 프랑스가 유럽 변호인단에서 자국의 역할을 대신하고 영국이 유럽 본토에 관해 져야 할 책임을 덜어 주기를 원했다."('포스트워 1945-2005', 토니 주트)
광복회의 '국민감사 청구'는 또 카이로 선언에 대해 이렇게 기술한다. "선언은 일본이 불법 점령한 나라 중 유일하게 한국만 독립을 보장했습니다. 독립운동의 피나는 투쟁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당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에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도 있다. 이들 지역에서도 독립투쟁은 있었지만 '선언'은 독립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왜일까?
이들 지역은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이 지배하고 있었으나 2차 대전에서 일본에게 쫓겨났고, 일본이 패망하자 이들 지역을 재식민화하려고 했다. 이들 모두 유럽 국가이자 식민지 보유라는 공동의 이익이 있었다. 미국은 식민지가 없지만 영국과는 혈연적·정치적으로 가깝다. 이런 사정 때문에 '선언'은 이들 지역의 독립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왜 독립을 보장받았나? 피나는 독립투쟁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유럽 국가가 지배하지 않아 그들의 이해와 무관하기 때문에 독립을 보장받은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광복은 연합국의 선물'이라는 김 관장의 말은 틀린 것이 없다. 그럼에도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그 죄는 무엇일까.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받은 죄, 그리고 역사에 무지하거나 무지하려고 애쓰는 민주당 사람들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게 죄라면 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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