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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의 페리스코프] AI 50명이 수천 명을 이긴다고? — 군사력의 본질을 모른 위험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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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주은식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강원도 화천 7사단에서 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강원도 화천 7사단에서 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1일 페이스북에서 "AI 전투로봇 50명이 수천 명의 적을 감당할 수 있다"는 발언을 내놓았다.표면적으로는 첨단기술에 기반한 국방혁신의 비전을 제시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군사력의 본질을 오해한 위험한 신호일 수 있다. 군 최고사령관은 자신이 지휘하는 군이 어떤 환경에서 싸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국방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이며, 병력·기술·동맹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종합체계'다. 이 대통령 발언의 문제점을 군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현실적 국방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군사력은 숫자의 힘에서 출발

전쟁철학과 군사학의 거장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수적 우세는 전쟁의 첫째 원칙이라는 "수의 우세법칙(the Law of Numbers)"을 강조했다. 병력이 많으면 전선을 유지하고, 측방기동과 예비전력 투입같은 전략적 옵션이 늘어난다. 반대로 병력이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무기와 전략을 갖추고 있어도 장기전·소모전에 취약해진다.

현대전(現代戰)이 첨단무기 중심으로 바뀌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2022년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양국은 대규모 드론전·사이버전·정밀타격전을 수행하지만, 동시에 수십만 명의 병력을 계속 징집하고 투입하고 있다. 결국 전쟁은 단발성 전투가 아니라 지속적인 충돌이며, 병력의 총량은 여전히 전쟁 지속 능력의 핵심 지표이다. "50명이 수천 명을 이긴다"는 발언은 전쟁을 게임처럼 오해한 결과이며, 전략적 현실을 도외시한 낙관론이다.

◆두푸이 방정식이 말하는 '수·질의 균형'

미국의 군사분석가 트레버 두푸이(Trevor N. Dupuy)는 그의 역사평가연구소(HERO,Historical Evaluation Research Organization)에서 발행한 여러 저술에서 전투력 S = k·N²라는 방정식으로 설명했다. 여기서 N은 병력 수,k는 무기·지휘·사기 등 병력의 질,
S는 전투력(Strength)이다.

이 식에서 N은 제곱으로 반영되므로 병력 수가 줄면 전투력은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한다. 아무리 정예부대라도 전투력 숫자(N)가 극단적으로 작으면 장기간 작전을 지속할 수 없다. 특수부대가 전술적 국지전에서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지만, 국가 전체 전쟁을 끝내지는 못한다.

AI·드론·스마트 무기 역시 전투력 승수로서의 역할은 크지만, 인간 병력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병력규모가 1/3이면 질은 아홉 배가 되어야 상쇄된다. 북한군이 아무리 핫바지 군대일지라도 우리군이 아홉 배나 질적으로 우세하다고 볼 수 없다.

AI 전투로봇과 자율드론은 전장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소모품이다.
AI 전투로봇과 자율드론은 전장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소모품이다.

◆전쟁은 총력전이자 지속전, AI 만능주의의 환상

AI 전투로봇과 자율드론은 전장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소모품이다. 파괴되면 재보급·정비·재프로그래밍이 필요하며, 생산능력·물류체계·통신망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또한 점령지 통제, 민간인 보호, 치안유지, 전후 재건 등은 여전히 사람이 담당해야 한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AI기반 표적식별·드론 타격이 대규모로 사용됐지만, 결국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은 피할 수 없었다. 로봇 50대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발상은 군사작전의 다층적 현실(심리전, 정보전, 외교전, 민군작전)을 간과한 기술 만능주의에 가깝다.

◆자주국방은 동맹 배제가 아니다.

이 대통령은 또 "외국 군대 없이는 자주국방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굴종적 사고"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주국방은 동맹을 버리고 홀로 서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진정한 자주는 국내 역량의 극대화+동맹 전력과의 최적 통합을 통해 달성된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생전에 "한미동맹은 우리 힘을 배가시키는 전투력 승수"라고 말했다. 동맹은 우리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억제력을 확대하며, 전시에 미군의 전략자산 투입을 보장한다. 이를 이념적 대립으로 몰아가거나 '굴종'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것은 국민을 불필요한 안보논쟁으로 분열시킬 뿐이다. 자주국방은 고립주의가 아니라 연합방위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핵에 대한 대책이다. 대통령은 북한핵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 대책부터 밝히고 위의 사항을 말해야 했다. 현재 우리군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문제는 핵을 가진 김정은을 핵이 없는 우리군이 어떻게 대응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것인지를 밝혀야 했다. 그래서 역대 군통수권자들은 미군과의 확장억제를 보장받기 위하여 자존심 다 접어두고 국민을 위해 미군과 동맹을 유지하면서 연합작전을 추구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핵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핵자강을 하여 국민이 경제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감내하실 각오가 되어 있으시다면 과감하게 자주국방을 위하여 도전하겠습니다. 국민 총생산이 1조8천억 달러의 우리가 인구도 세 배 가량 많고 국민총생산도 4조 9천억 달러의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돈을 미국에 투자한다면 우리 경제는 파산하거나 다시 대한민국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이는 자주국방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감내해야 할 비용입니다. 국민 여러분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국방부장관이 연설하는 수준을 보면 국방위원회 장기 활동자가 맞는지 정말 걱정이 되고 국군최고통수권자의 인식을 보면 국민의 입장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잘 모르면 전문가들에게 물어보고 경청이라도 했으면 국민들이 안심이라도 할 수 있다. 안보 담당 두 지도자의 발언을 보면 난간없는 우물가에 서 있는 형상으로 위태롭다.  

◆현실적 국방개혁이 해답

한국 안보환경은 북핵·미중 경쟁·저출산에 따른 병력감소라는 삼중의 압박을 받고 있다. 해법은 기술·병력·동맹의 균형적 결합이다.충분한 병력과 예비전력 확보,징병제의 효율화, 장교단의 질적 수준 증대 및 부사관단의 생활 안정화로 복무의욕 고취, 첨단 교육훈련으로 질적 전환,유·무인 복합체계의 통합 운용,AI·드론·로봇과 인간 지휘체계의 인터페이스 상호보완적 결합,한미동맹 및 다국적 연합전력 강화,정보·지휘통제·화력협력 체계의 실시간 통합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진정한 '강군'이 완성된다.

정치적 구호나 과학기술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오히려 국민에게 잘못된 안보환상을 심어주고 대비태세를 약화시킬 수 있다.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국방을 다룰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주는 것과 동일하다고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은 지적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국방개혁과 전략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주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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