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소속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국가 전산망(電算網)이 일제히 마비되는 초유(初有)의 디지털 재난이 발생했다. 정부 온라인 민원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국민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전산실 한 곳에 난 불이 국가 행정 서비스 전면 중단 사태로 확대된 것이다. 정보 시스템 이중화(二重化) 장치가 제대로 구축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재난이다.
26일 발생한 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 화재로 600여 개의 정부 전산 시스템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화재 영향으로 항온항습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서버의 급격한 가열(加熱)이 우려돼 정보시스템 보전 차원에서 선제적(先制的)으로 시스템 가동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정부24(온라인 행정서비스 플랫폼)와 우체국, 국민신문고, 행안부 홈페이지 등 대전 본원이 담당하는 647개 전 시스템이 멈췄다. 국민들은 주말·휴일 동안 모바일 신분증이나 무인 민원 발급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추석을 앞둔 우체국에선 택배·우편·금융 업무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28일 화재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전산 시스템 96개를 제외한 551개 서비스를 우선 복구(復舊)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 불편은 가중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예견(豫見)됐던 재난이다. 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 화재가 정부 전산 시스템 마비로 이어진 것은 데이터를 보관하는 클라우드 환경의 '이중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2년 '카카오톡 먹통 사태' 때 판교 데이터센터 운영 관리 도구가 이중화되지 않아 벌어졌던 대규모 장애가 정부 전산망에서 재연(再演)된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판 카카오톡 먹통' 사태다. 대전 본원과 대구·광주 분원(分院)에 이중, 삼중화 시스템이 있었다면,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서비스가 신속하게 복구됐을 것이다.
정부는 대전 본원 외 지역 분원에 데이터 백업 체계를 갖췄지만, 이를 가동할 시스템이 부족해 복구가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란다. 무책임한 변명이다. 정부는 3년 전 카카오톡 먹통 사태 당시 업체 측에 다중화(多重化) 클라우드 서버 구축 등 강도 높은 대책을 요구했으면서도, 정작 제 앞가림을 하지 못했다. 행안부는 올해 핵심 과제의 하나로 '디지털 정부'를 내세우며, 서비스 장애 예방과 안정성 확보를 약속했다. 허울뿐인 말잔치였다.
행정 전산망은 카카오톡보다 훨씬 중요한 국가 핵심 인프라다. 전산실 한 곳의 화재가 국가 전산망 가동 중단으로 이어지고, 복구마저 오래 걸린다는 것은 국가 안보(安保)의 취약점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다. 행정 전산망이 사이버 테러 공격의 최대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재난은 2023년 윤석열 정부 시절 2개 서비스가 중단된 행정망 마비 사태보다 훨씬 큰 규모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행정안전부 장관을 경질(更迭)하고 대통령 대국민 사과부터 하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행정 전산망이 국민 생활과 국가 안보에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카카오톡 먹통·2023년 행정망 마비 사태에서 얻은 교훈을 살리지 못했다. 재해·재난은 언제 닥칠지 모른다. 더 이상 같은 재난이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전산실에 불이 나도 전산망이 가동되는 게 원칙이다. 시스템 복구가 최우선이다. 유사(類似)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도 필수다. 예상됐고 반복된 재난이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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