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산과 교수들은 대학병원에서 안전한 분만이 가능하고 산모의 건강까지 돌볼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을 4~6명으로 본다. 이는 적어도 대학병원의 인력이 산모를 돌봄과 동시에 교수로서의 교육, 연구와 관련 행정 업무, 그리고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한 당직 인력 등을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다.
김혜민 칠곡경북대병원 산과 교수는 "다른 진료과도 마찬가지겠지만, 대학병원의 산과는 환자 진료뿐만 아니라 24시간 당직, 전공의와 학생 교육, 학술 연구, 응급 분만 및 고위험 임신 관리 등 복합적인 업무가 이뤄진다"며 "이 모든 역할을 끊임없이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 병원에 최소 6명의 산부인과 전문의가 있어야 각자 역할을 나누고, 업무 과중 없이 안정적으로 진료와 교육,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구 5개 대학병원 중 김 교수가 제시하는 최소조건을 만족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24일 현재 대구 시내 5개 대학병원의 산부인과 의사는 40명이다. 병원별로 살펴보면 경북대병원 7명, 영남대병원 6명, 계명대동산병원 11명, 대구가톨릭대병원 7명, 칠곡경북대병원 9명이다. 이 중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 교수는 경북대병원 2명, 영남대병원 1명, 계명대동산병원 4명, 대구가톨릭대병원 2명, 칠곡경북대병원 4명으로 확인됐다. 그야말로 '최소한 중 최소한'의 조건이라도 만족하는 대학병원은 단 2곳 뿐이었다.
대구경북 산부인과 의사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지역 산과의 위기는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권명 효성병원 고위험·고령 산모센터 과장은 "전공의 시절인 10년 전부터 산부인과 레지던트 1년차가 안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전부터도 대학병원 산부인과에서 분만을 도와줄 수 있는 전공의는 선배 두 명 뿐이었다"며 "선배나 동료 의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90년대까지만 해도 전공의들 사이에서 산부인과의 경쟁률이 꽤 높았었는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크게 줄어들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20년새 산과의 지원자가 크게 줄어든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낮은 보상 체계'를 꼽는다. 진료 과정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지만, 저수가로 인해 의료진이 받는 보상은 너무 적고, 당직·야간 분만 등으로 인해 산과 의사들의 삶의 질 또한 기본적인 수준조차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산과 의사들의 주장이다.
배진영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을 받을 수 있는 의료 장비, 신생아를 돌볼 수 있는 인력과 시설, 출산 후 산모에게 있을 건강 문제까지 돌볼 수 있는 정도의 규모를 갖추려면 의원급 1차 의료기관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그나마 대형 여성병원이나 종합병원 규모의 2차 의료기관 등에서 일반적인 분만은 가능하지만 고위험 산모까지 감당하려면 결국 상급종합병원 의료 자원 또한 넉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가보다 산과 의사들이 더 무서워하는 것은 의료소송이다. 최근 서울 한 대학병원의 분만 과정 중 발생한 의료사고 소송에서 분만을 담당한 교수와 전공의가 산모에게 7억원 가량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교수와 전공의가 불구속 형사 기소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산과 의사들의 두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김효신 영남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산과 의사들은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결과로 인해 재판에 서는 것이 내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기소 및 재판 결과를 보며 느끼는 좌절감 등에 압도돼 있다"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선배 산부인과 의사로서 어떻게 후배 의사를 소송과 천문학적 배상금이 난무하는 곳으로 끌어들일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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