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한 마리도 아닌 세 마리. 검은 고양이는 과거, 얼룩 고양이는 현재, 하얀 고양이는 미래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름이 뭐 그러냐고 핀잔하실까봐 간단히 설명하자면 검정은 더 이상 새로운 걸 기록할 수 없음을, 얼룩은 혼돈을, 하양은 아직 그려지지 않은 시간을 의미한다.
고양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현재야, 밥 먹어야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재가 뛰어와 그릇에 코를 박는다. 슬며시 다가온 미래가 앞발을 들어 펀치를 날리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현재는 언제나처럼 먹는데 정신이 팔려 앞도 뒤도 보지 않는다. 한심한 눈으로 지켜보던 과거가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미래는 현재의 그릇이 비워지는 속도가 못마땅한 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하악질도 한 번 해 준다.
"과거야, 과거 어디 있냐?" 아무리 불러도 과거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방 저 방을 거쳐 마지막으로 들여다본 화장실에도 없다. 한참 찾은 끝에 현관 신발장 안에 있는 과거를 발견한다. 네 칸으로 된 구닥다리 신발장은 얼추 30년이 다 된 물건이다. 얇은 합판으로 만들어진 그것을 여태 버리지 못하는 건 어머니의 손때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가 절정에 이른 무렵 어머니는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혈액암 진단을 내린 담당의는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문제는 면회가 되지 않는다는 것. 3일째 되던 날 간호사에게 간청을 한 끝에 들어갔다. 산소마스크와 붕대, 그리고 주렁주렁한 링거 줄로 포박돼 눈만 빠끔한 어머니. 그 눈마저 굳은 송진처럼 뭉쳐져 있었다. 이틀 전부터 말도 못하고 눈도 뜨지 못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과거가 나를 할퀴고 있었다.
"어무이, 용서해 주세요. 제가 많이 잘못했습니다." 어머니가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내 몸이 흔들릴 정도로. "어무이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간호사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똑같은 말에도 두 번 다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기다렸던 어머니는 그러구러 이틀을 보낸 뒤 세상을 떠났다.
현재는 과거를 꿈꾼다. 과거가 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힘이 센 과거가 하악질을 하면 현재는 지레 겁을 먹고 구석으로 숨는다. 언젠가부터 잘 먹지 못하는 현재는 깡말랐다. 미래는 현재가 남긴 먹이만으로도 배가 부른지 현재가 보든 말든 낮잠을 청한다. 가끔 잠꼬대를 한다. "꿈 깨. 현재는 절대 과거가 될 수 없어."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경기지사 불출마", 김병주 "정치 무뢰배, 빠루로 흰 못뽑아내듯…"저격
李대통령 '냉부해' 댓글 3만개…"실시간 댓글 없어져" 네티즌 뿔났다?
배현진 "'이재명 피자'→'피의자'로 잘못 읽어…내로남불에 소름"
의대 신입생 10명 중 4명은 여학생… 의약학계열 전반서 여성 비율 상승
'이재명 피자' 맛본 李대통령 부부…"이게 왜 맛있지?" "독자상품으로 만들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