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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책 한 권 내는 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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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글쓰기의 태도
[책] 글쓰기의 태도

유독 음식에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구에 내려온 첫해였다. 하도 무료해 음식블로그를 운영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삼시 세끼를 외식으로 해결하던 때였고, 이왕 먹은 거 글로 남기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 시절 음식에 대한 집중과 몰입은 세 번째 책 '맛있는 영화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음식과 관련한 글을 쓸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던 "모든 음식에는 제값이라는 게 있다"는 말. 돈 아깝지 않은 음식은 '내 돈을 주고 먹었을 때만' 알아볼 수 있다는 얘기다.

다섯 번째 책을 출간한 지 40여 일이 지났다. 공모전 선정작이라고는 해도 이전 책과 다를 게 없다. 북토크를 하고 이런저런 글로 홍보에 뛰어들어 저자의 의무를 다하는 건 마찬가지. 자기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모든 이들이 그렇듯 나 또한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책에 대한 반응을 살피고 후기를 찾아본다. 물론 예외도 있으니 모 영화감독은 상처받기 싫어서 리뷰나 평가를 애써 외면한다고 했다. 그 마음 수긍하고도 남는다. 1996년 이병헌의 영화 데뷔작 '런 어웨이'를 두고 당시 '씨네21' 주평 이정하와 감독 김성수가 지상 전투를 벌였고 몇몇 감독이 가세하면서 결국 평론가 이정하의 절필 선언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아마도 SNS와 온라인서점에 올라온 내 책에 대한 첫 번째 평가. '표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시작해 온통 도파민 터지는 책이 가득한 요즘과 비교할 때 이 책은 '잘 팔리지 않을 거 같다'는 내용이었다. 계정을 찾아가 보았다. 모든 포스팅이 책이었다. 그러니까 책으로만 채워진 풍경. 그러나 거의 모든 책이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것으로 보인다. 생소하고 낯선 모습이었다. 말로만 듣던 '책만 읽는 사람들'의 실체를 확인한 묘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언짢을 정도는 아니다. 내 글의 열렬한 지지자 중 한 명도 표지가 어떤 의미인지 애매하다고 아쉬워했으니까.

출판사에서 표지를 결정하는 과정과 선정 이유는 나도 모른다. 아니 굳이 저자가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럴만하니까, 충분히 고민한 결과일 테지, 정도에서 생각을 멈춘다. 몇 개의 시안을 놓고 저자 의향을 묻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거부하긴 힘들다. 표지 디자인은 누가 공짜로 해주나? 작가는 좋은 글을 쓰고 편집과 디자인은 출판사 판단에 맡긴다는 게 내 방식이다.

책이 나오고 처음 몇 주는 흥분과 기대와 설렘으로 광명천지가 된다. 축하와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가 쌓이고 북토크를 하면서 자부심과 자의식이 한껏 치솟는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과 착시(증세가 심한 이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환각에 이르기도). 그러다 시간이 흘러 몇몇 부정적 리뷰에 실망하고 예민해지는 사이 온라인서점 판매지수는 곤두박질치며 오프라인 서점에서 내 책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시기가 온다. 언제? 대체로 3개월 후쯤. 즉 에세이의 유효기간은 3개월로 보는 게 출판시장의 정설. 내 식으로 표현하자면 '시큰둥의 계절'이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앞으로 한 달쯤 남았을까. 그보다 더 빠를라나. 그때까지 내 마음이 어떻게 요동칠지 나도 모른다. 이미 유사한 감정변화를 네 차례 겪어본 터라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긴 하다. 연초에 언급했고 책에도 썼지만, 책 출간이 뭐라고 이리도 사람을 들썩이게 하는지.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 했으니 책을 안 내는 게 무병장수의 지름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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