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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칼럼] 히틀러의 '특별'과 민주당의 '전담', 역사의 우스꽝스러운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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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훈 논설주간
정경훈 논설주간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되풀이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悲劇)으로 또 한 번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는 것을."

칼 마르크스가 프랑스 혁명사 3부작 중 하나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한 말이다. 여기서 비극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제1공화정을 무너뜨리고 황제가 된 것을, 소극은 그의 사촌인 루이 보나파르트가 제2공화정을 쿠데타로 전복(顚覆)한 것을 가리킨다. 이를 들어 마르크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한 번의 비극을 겪고도 제대로 반성하지 못하면 비슷한 사건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재연(再演)된다는 것이다.

'위헌'이라는 헌법학자와 법조계의 일관된 비판에도 '내란전담재판부'를 만들려는 이재명 정권의 행태는 이를 실증하는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은 한덕수 전 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이하 '설치법')을 발의했다. 히틀러가 한 짓과 똑같다. 법원이 원하는 대로 판결해 주지 않자 '특별재판소'를 만들었다.

1933년 2월 27일 독일 의사당에 화재가 났다. 불을 지른 범인은 마리누스 판 데어 뤼베라는 네덜란드 출신 석공으로, 한때 공산당원이었지만 범행 당시에는 공산당과 결별한 상태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그의 방화를 공산당 봉기의 신호탄이라고 확신하고, 정치적 형사 사건을 전담하는 최고 사법기관인 제국법원이 관련자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해 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제국법원은 뤼베에게는 사형을 선고했지만(이것도 소급 적용 불가라는 법 원칙의 파괴였다. 당시 형법상 방화는 사형 대상이 아니었지만 법무부는 방화범도 소급해 사형에 처하는 새 법을 만들었다), 뤼베와 함께 국가반역죄로 기소된 세 명의 불가리아인과 독일 공산주의 운동가 한 명은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벤저민 카터 헷)

이에 격분한 히틀러는, 의사당 화재 다음 날인 28일 힌덴부르크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발동해 놓은 '국민과 국가를 위한 대통령 긴급명령'에 입각해 3월 21일 3개의 명령을 제정했다. 그중 하나가 모든 고등지방법원에 정치 범죄를 심리하는 '특별재판소'를 설치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겨난 특별재판소는 1935년 독일 전역에 25개나 있었는데 재판은 말 그대로 특별했다. 통상적인 변호 절차도 없었고 항소도 제한할 수 있었다. 재판은 신속했다.

히틀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1934년 4월 24일 '민족재판소'를 설치해 제국법원이 맡고 있던 정치적 형사 사건 재판을 이관해 전담시키고, 나치 이념을 따르는 판사들로 채웠다. 재판 속도는 특별재판소와 같이 빨랐다. 당시 법원이 검찰과 별도로 실시하는 사전 조사도 없었고, 항소는 아예 불허됐다.(「히틀러 국가」, 마르틴 브로샤트)

이만큼은 아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설치법'도 이런 속도전을 규정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재판 때는 판사들이 노골적으로 무시해도 아무 소리 않던 6·3·3원칙(1심 6개월, 2·3심 각 3개월 내 종결) 준수를 명시했다. 속전속결 재판으로 유죄를 받아 내 내년 지방선거에 써 먹으려는 속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또 있다. '설치법'은 내란전담재판부의 판결문에 모든 판사의 의견을 표시하고 재판 과정 녹음·녹화·촬영 허가를 의무화했다. 이는 재판의 투명성 확보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함일 수도 있겠지만 '여론재판'으로 전락시킬 가능성도 크다. 피고의 자기방어는 친여 매체나 여권 지지 세력에 '내란범'의 가증스러운 발뺌으로 비칠 수 있으며, 판사 또한 친여 세력의 눈치를 보면서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반하는 의견을 낼 수도 있다.

이 또한 히틀러가 한 짓과 같다. 히틀러는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기획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한 민족재판소의 재판 전 과정을 촬영토록 했다. 이때 찍은 필름으로 극장 영화도 만들고 '민족재판소 앞에 선 반역자들'이라는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히틀러 Ⅱ,몰락 1936-1945」, 이언 커쇼) 재판을 '정치 쇼'로 만든 것이다.

히틀러의 '특별'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반복되고 있는 이 땅의 현실은 말 그대로 소극(笑劇)이다. 반복의 주동자가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집단이라는 사실은 기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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