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도내 약업 관계자를 총망라한 경북 약업자 대회를 도청 제1회의실에서 열고 이를 토의한 결과 단호 의사회 측의 약업자 권리침해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는데 이의 제일보로 지난 5일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중앙청 안 민정장관, 보건후생 국장에 전달하는 동시에 의사는 의사의 천직을 다할 것이고 약업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은 즉시 중지하도록 요망하였다."(매일신문 전신 남선경제신문 1947년 11월 6일 자)
한약과 양약의 유통과 판매를 담당하는 약업자들이 발끈했다. 약업자들은 의사회의 권리침해에 대한 반대운동에 돌입했다. 기존의 의약품 수급은 의약품도매업자가 약업 소매상 조합을 통해 일반과 개업 의사들에게 분배했다. 약품을 판매하는 소매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수입을 올렸다. 그런데 개업 의사들이 수입 의약품을 직접 거래하겠다고 나섰다. 의사들이 소매업자를 건너뛰고 약을 직접 사서 환자에게 팔겠다는 것이다. 약업자들은 이를 권리침해로 보고 반발했다.
약업자들은 무엇보다 당장 수익 감소를 걱정했다. 경북 약업자들은 궐기대회를 열고 의사들의 약품 직접 판매는 불법이라고 성토했다. 게다가 서울의사회에서 계획 중인 약품 회사 설립은 의사의 천직인 진료 행위를 이탈한 악질 행위라고 반대 목소리를 냈다. 왕진에서의 약품 판매를 겨냥했을까. 의사들이 수입 약품을 고가로 판매해 환자 피해가 우려된다고 했다. 의료용 약품을 불법적으로 빼돌린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약사라고 할 수 있는 약제사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약업자들이 약제사의 역할까지 했다. 미군정으로 서양 의약품이 보급품으로 들어오면서 약업자의 취급 범위가 한약재에서 양약으로 넓혀졌다. 양약이 밀수품으로 들어와 시장 등에서 비싸게 팔리고 가짜 약이 판친 데는 모리배와 약업자들의 결탁도 한몫 했다. 다이아찡 같은 화농증 약은 가짜 약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또 표백성분의 흰 가루나 밀가루를 섞어 치질약을 기침약으로 속여 팔기도 했다. 대구역 주변 거리에서는 약 판매상들이 몰려 있었다.
"금반(이번) 대구 부내에 거주하는 한약종상으로서 특히 건재 취급을 주로 하는 업자를 망라하여 10일 대구한약상구매조합이 신탄생하였다. 사업 목표는 약업 발전 급 경제 안정과 당초 약제구입 기타 한약 증산의 조장 등인데 조합 총자본금은 50만원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은 역원이 당일 창립총회 석상에서 결정되었다."(남선경제신문 1947년 1월 12일 자)
대구한약상구매조합은 해방 이태 뒤 새로 결성됐다. 이 역시 약재상들이 약업자와 의사의 권익 다툼에서 보듯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선제 조치였다. 대구는 일찍이 약령시로 대표되는 한약 유통 시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만큼 약재상들에게는 큰 시장이었다. 1894년 이전에는 한 해 동안 춘령시와 추령시로 나눠 두 번씩 한약 시장이 열렸다. 그 이후는 개시일이 들쑥날쑥했어도 시장이 열리면 전국의 약업자들이 모여들었다.
대구 약령시의 한약재는 주로 만주나 양쯔강 이남 지역 등에서 수입되었다. 약재는 약령시나 개인을 통해 한약상으로 배급되었다. 한약상의 약재는 다시 약방이나 의원을 통해 소비자에게 건네졌다. 하지만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의 변고가 생기면 약재의 수입이 끊기고 가격 폭등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약업자의 독점은 매점매석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었다. 일제는 이 같은 독점방식으로 다수의 조선인 약업자들에게 타격을 주었다. 조선총독부는 한때 전국적인 배급조합을 배제하고 경성의 특정 한약 배급조합에 수입 약품 7할의 유통권을 주었다. 유통의 독점권으로 다수 조선인 약업자의 이익을 차단했다.
해방 후 경북 약업자들은 궐기대회를 열어 의사들의 약품 직접 판매를 반대했다. 약은 약업자가 맡고 의사는 진료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약의 약재상들도 도매와 소매의 독점권을 두고 대립했다. 대립의 속내는 누가 뭐래도 돈벌이였다. 하지만 다툼의 대상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은 희한하게 닮았다. 약값이 오르면 서민들은 감기약 하나도 사 먹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이야말로 약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맞든 아니든 약값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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