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기(婚期) 찬 자녀를 둔 분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상견례, 혼수, 신혼집, 세간 장만 등 확 달라진 결혼관·문화 얘기에 따라가기 숨이 찰 정도였으나 압권은 따로 있었다. 신세대 시아버지의 '끝판왕'이라야 할 수 있을 법한, "며느리에게 시부모 전화번호를 아예 입력도 하지 마라"고 했다는 충격적인 얘기다. '말도 안 된다' '농담도 잘한다' '과장이 심한 것 아니냐'는 반응에 "둘이 잘 살면 된다. 시부모는 신경 쓰지 마라. 전화도 하지 마라"고 했다는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 그렇게 되겠나'고 생각하면서도 '혹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어질함도 느껴졌다.
세태(世態) 변화로 인한 '현실 자각'은 엘리베이터에서도 종종 경험한다. 아파트 공동 현관문을 들어선 뒤 엘리베이터 쪽으로 이동할 때 들려오는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와 속도다. 마침 닫히던 중이었는지 공동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의도적으로 얼른 닫힘 버튼을 눌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다시 열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을 가지기 싫어하는 요즘 세태의 반영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 수명이 세계에서 가장 짧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얼마 전 소셜미디어를 달궜던 '메모 사진'도 세태 변화의 한 단면(斷面)이다. '앞집 문 여는 소리나 인기척이 들리면 조금 기다렸다가 나와 달라. 서로 지켜야 할 암묵적인 룰이다'라는 메모가 아파트 현관에 붙어 있는 사진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억지다'와 '공감된다'로 크게 나뉘었지만, 이웃사촌으로 불렸던 '이웃'은 어느새 '누가 사는지 관심이 없는 존재'가 됐다가 이젠 아예 마주치기도 싫은 대상이 됐다. 실제로 집을 나설 때 문 밖 인기척을 확인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시간은 '나이 속도'대로 간다는 말이 있다. 10대는 시속 10㎞의 속도, 20대는 20㎞/h, 50대는 50㎞/h, 70대는 70㎞/h 속도로 지나간다는 의미다. 실제 그럴 리야 있겠냐마는 나이가 들수록 체감(體感)하는 시간이 얼마나 빨랐으면 이런 말까지 나왔겠나. 점점 빨라지는 체감 시간에 급변하는 세태 변화까지 겹치니 따라가기도 버겁다. 시간도, 변화도 빨라도 너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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