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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홍준표] 차라리 서울을 포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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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 대책 집착이 시장 왜곡

홍준표 세종본부 차장
홍준표 세종본부 차장

집을 사려는 수도권 청년은 대출이 막혀 은행 창구에서 돌아서고, 지방 중개업소는 "손님이 한 달째 한 명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 정부는 여전히 서울 집값만 들여다본다. 이게 과연 정상적 풍경일까.

지난 15일 정부가 내놓은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은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묶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40%로 낮추는 고강도 내용이었다. 수도권 집값 상승세를 막겠다는 의도였지만 발표 직후부터 혼선이 잇따랐다. 비주택 담보대출 규정이 하루 만에 정정(訂正)되는 등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정부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부동산 정책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로 움직인다. 정책 일관성이 깨지는 순간 시장은 경색된다. 시장은 정부가 진심으로 국민의 삶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감지한다. 그 감각을 잃은 순간 어떤 대책도 방향을 잃는다.

정책의 초점은 여전히 '서울 집값'이다. 정부는 집값이 오르면 국민이 불안해하고, 떨어지면 시장이 안정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강력한 규제는 실수요자를 옥죄고, 현금 부자만 남긴다. 집값은 잠시 멈춰도 불균형은 깊어진다.

생애 첫 주택을 사려는 신혼부부와 출산 가구가 대출 한도 축소로 내 집 마련 꿈을 접고 있다. 규제가 서민을 보호하기는커녕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 강도만 조절할 뿐, 구조적 개선에 대한 논의는 늘 뒤로 밀린다.

정책 신뢰가 무너지는 또 다른 이유는 위선이다. 정부 고위 인사들이 이른바 '수도권 상급지' 갭 투자나 고가 부동산 보유로 논란을 일으켰고, "집값이 떨어지면 그때 사라"는 망언은 공분(公憤)을 샀다. '시장 안정'을 외치던 사람들이 실제로는 시장 이익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의 도덕적 권위는 급격히 흔들렸다.

문제는 이런 혼선과 불신의 근원이 중앙정부 중심 사고에 있다는 점이다. 모든 부동산 문제를 서울 중심, 중앙 책상 위에서 해결하려는 방식이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지방은 미분양이 넘치고, 준공 후 팔리지 않은 주택이 2만 가구를 넘어섰지만 이번 대책엔 지방을 위한 문장이 단 한 줄도 없었다. 수도권 규제가 강해질수록 지방은 얼어붙고, 지역 간 격차는 더 벌어진다.

심교언 전 국토연구원장은 매일신문과 인터뷰에서 "우리처럼 중앙정부 중심으로 주택 정책을 추진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며 "자치단체가 주체적으로 부동산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지역의 수요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그 지역 자치단체다. 지역은 미분양 해소, 도심 재생, 노후 주택 정비 같은 현실적 과제를 누구보다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

지방이 자율적으로 주택 정책을 설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산업 기반이 있는 도시는 기업형 임대주택을, 인구 감소 지역은 생활 인프라와 연계한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식의 세밀한 전략이 가능하다. 이런 구조적 개혁 없이 서울만 통제하는 정책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 정책은 '가격 통제'가 아니라 '삶의 안정'을 목표로 해야 한다. 정부가 모든 답을 쥐고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지역이 스스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을 열어 줘야 한다. 서울 집값을 억누르는 일이 능사가 아니다. 지방이 살아야 시장이 산다. 그것이 지금 한국 부동산 정책이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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