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31일, 대구고등법원은 대구교사노동조합이 교사들과 함께 대구시교육청을 상대로 진행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단순히 억울한 교사들을 구제한 것을 넘어, 전국의 수많은 교사와 공무원들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고 없는 경제적 폭탄
전 기간 급여환수를 당하는 교사들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휴직 후 복직한 교사들은 교육청이 정해준 호봉에 따라 매달 급여를 받아왔다. 그런데 10여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 교육청은 갑자기 "당시 호봉 책정이 잘못되었다"며 그동안 받은 급여 중 초과분을 전액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매달로 따지면 소액이지만, 10~20년 치를 합산하면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에 이르는 사례도 있었다.
교사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단지 교육청이 정해준 대로 급여를 받았을 뿐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 갑자기 급여 환수 통보를 받는다면, 이것이 과연 정당한가? 물론 잘못 지급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반납해야 하겠지만 전 기간에 걸친 거액을 모두 반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 이는 예측할 수 없는 경제적 재앙이며, 한 가정의 경제를 송두리째 흔드는 폭력에 가깝다.
◆법적 안정성을 위한 장치, 소멸시효
우리 법체계는 법적 안정성을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소멸시효다. 아무리 정당한 권리라도 일정 기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된다는 원칙이다. 이는 권리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법률관계를 조기에 확정시켜 사회 전체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다.
지방재정법 제82조 제1항은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금전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권리는 5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 상위법에 이렇게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청은 10년, 15년 전의 급여까지 모두 환수하려 했다. 이는 법이 보장한 소멸시효 제도를 무시한 채 행정 편의주의에 따라 움직인 것이며,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행정 권력의 남용이다.
◆무효와 취소 사이, 그리고 교사들의 딜레마
판례에 따르면 행정행위의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무효인 경우에는 5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 문제는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다. 종전 판례는 행정행위의 하자가 중대하기는 하지만 명백하지 않아 취소 사유에 그치는 경우, 호봉 재획정 시점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고, 사실상 전 기간에 걸친 급여 환수가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무효와 취소를 구별하는 것은 법률 전문가도 쉽지 않은 판단이다. 교사들이 이를 알 수 없음은 물론이고, 교육청 역시 자신들의 행정행위가 무효 사유인지 취소 사유인지 명확히 판단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교육청은 일단 전 기간에 걸친 급여 환수부터 진행한다.
실무에서 호봉 획정 오류는 대부분 법규를 명백히 위반한 무효 사례에 해당하며 최근의 판례들은 무효 사례를 더 넓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도 교육청은 이를 구별하지 못한 채 모든 사례에 일괄적으로 전 기간 환수를 진행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결국 교사들은 소송을 통해서만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법률 비용이 환수 금액보다 크거나 비슷한 경우라면 소송에 이겨도 실익이 없다. 게다가 상대가 교육청이라는 거대한 기관이다 보니, 대부분의 교사들은 소송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억울하게 돈을 내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
이번 판결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첫째, 급여환수를 할 때, 5년의 소멸시효를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교사들을 부당한 환수로부터 보호하는 길이다.
둘째, 교육청은 호봉 재획정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애초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년 호봉의 적절성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행정 실수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실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매년 관리하는 것이 진정한 행정의 책무다.
◆교육청과 인사혁신처에 바란다
교육청은 이제 이러한 문제점을 교육부 등 상위 기관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지침이 바뀌도록 건의해야 한다. 소극적 행정으로 일관하면서 교사들에게만 부담을 떠넘기는 태도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인사혁신처 역시 이번 판결과 같은 다양한 판례들, 그리고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수용하여 지침을 변경해야 한다. 법원이 거듭 판시하고 있고, 국민권익위원회가 권고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전 기간 환수'라는 낡은 지침을 고수하는 것은 행정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행정의 실수는 행정이 책임져야 한다. 그 대가를 교사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정의롭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이번 판결이 전국의 많은 교사와 공무원들이 구제받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행정이 법치의 원칙을 되새기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서모세 대구교사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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