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자녀를 평생 돌봐야 한다는 숙명을 맞닥뜨린 부모들은 신체적·정신적 소진을 경험하고 있다.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부모 393명 가운데 36.1%가 우울감을 겪고 있다.
자녀의 등교부터 치료, 식사까지 모든 일과를 부담하는 부모들은 정작 자신들의 삶은 지워져 가고 있다고 말한다. 휴식 등 여가 생활은 사치가 됐고 잠시의 쉼도 허락되지 않는 일상 속에 몸과 마음은 무너진 지 오래다.
◆ 죄인 취급 받으면서 등원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이태진(9·가명) 군의 어머니 박희원(44·가명) 씨는 평생 처음으로 화병을 얻었다. 발달장애아를 키운다는 이유로 마주한 차가운 시선과 무심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다.
특수 어린이집이 많지 않은 경남에서 거주했던 희원 씨는 일반 원생들이 있는 곳에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태진 군이 낮잠을 자지 않는다며 '문제아'로 낙인을 찍기 시작했다.
"일반 아이들 사이에서도 낮잠을 안 자는 원생들이 있잖아요. 교육기관이라면 그런 아이들을 위한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폐라는 이유로 저희는 항상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태진 군이 5살이 되면서 들어간 유치원에선 더욱 상처가 컸다. 단체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며 지적을 받았고 상담에서도 항상 '아이가 문제'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희원 씨는 2년간 아들의 유치원을 네 번이나 옮겼다. 이 과정에서 한 유치원에선 입학이 어렵다고 통보를 하기도 했다. "다시 전화가 와서 입학이 가능하다고 태진이를 받아주긴 했지만 그때 느꼈어요. 발달장애 아이는 언제든 거부될 수 있다는 점을요."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태진 군은 초대받지 못한 원생이었다. 단체로 움직이는 체험활동도 쉽지 않았다. 견학을 하루 앞두고 유치원에서 '태진이가 같이 가는 건 조금 위험할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던 것. 급기야 사고가 발생 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명을 강요했다.
학교에서 10년 가까이 교사로 교단에 섰던 희원 씨로선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경우라도 학부모에게 서명을 요구하는 교육기관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다.
"선생님들이 이끌어주면 잘 따르는 아이라고 정중히 말씀했습니다. 견학은 갈 수 있었지만, 안전문제 발생 시 부모에게 서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당황스럽고 서글펐어요."
서러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견학을 마친 아들을 데리러 간 희원 씨에게 한 교사가 '발달장애 검사를 시켜봤냐'며 쏘아대기 시작했던 것. 태진 군이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교사는 아동학대와 같은 말을 이어 나갔다.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숨이 막히면서 너무 모욕적이었어요. 태진이는 도대체 무슨 죄가 있어서 그 말을 계속 듣고 있어야 했을까요…"
며칠 뒤에는 급식실에서 태진 군이 노래를 부른다며 직접 와서 눈으로 확인하라는 연락이 왔다. 희원 씨는 하는 수 없이 찾아갔으나 아들은 영어 알파벳 노래를 흥얼거릴 뿐이었다. 소란을 피우지도, 다른 원생들의 식사를 방해하지도 않았지만 교사는 지도가 어렵다며 답답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같은 상황을 경험한 희원 씨는 이제는 잘못이 없어도 먼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면서 속이 많이 상했다.
"우리나라에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였어요. 부모는 죄인이 된 것만 같습니다. 태진을 비롯한 아이들이 정상 아이들과 섞여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오면 좋겠어요."
◆ 돌봄으로 정신과 약물 복용
"제가 여자인지도 남자인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신예나(39·가명) 씨의 하루는 자폐성 장애를 앓는 첫째 딸 김지원(6·가명) 양의 일상에 맞춰 돌아간다.
지원 양은 매일 새벽 5시쯤 잠에서 깬다. 남편과 둘째가 아직 잠든 시간이라, 딸에게 '조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예나 씨의 하루 첫 일과다. 주말에는 가족의 숙면을 위해 딸을 차에 태우고 목적지 없는 운전을 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도 휴식은 꿈도 꾸지 못한다. 지원 양의 경우 혼자 노는 시간이 전혀 없다. 사소한 놀이라도 함께 하자고 요구하기 때문에 예나 씨는 책 한 장을 펼칠 틈이 없다.
딸이 자폐성 장애를 진단받은 이후로 외식과 같은 나들이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식당을 가면 지원이가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종아리에 알이 생길 정도로 돌아다니다 보니 민폐일 것 같아서 밥은 항상 집에서만 먹일 수밖에요."
예나 씨는 한때 방송작가로 일하며 나름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러나 딸의 치료를 위해서 일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경기도에 살았는데 지원이 치료센터가 있는 서울을 오가야 했어요. 왕복 3시간 넘게 걸리니까 프리랜서로 일하는 것도 어렵고, 온전히 딸한테만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돌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개인 시간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혼자 여행을 갈 수 있을까', '남편과 데이트를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불가능하다는 생각뿐이다.
올해는 지원 양의 특수학교 입학을 위해 경기도 생활을 정리하고 연고도 없는 대구로 내려와야만 했다. 수도권에서는 발달장애 특수학교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학교를 보내면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학교에 보내도 마음이 자유롭지 않아요. 아이가 있는 교실에 제가 있는 것 같은 마음이에요. 혹시 '지원이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오지는 않을까' 하면서 온종일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매일 받아보는 알림장을 확인하는 일도 긴장의 연속이다. '오늘은 지원이가 많이 울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거듭된 불안은 결국 병이 됐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작은 일에도 심장이 뛰었다.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물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정상 발달인 둘째의 학부모 모임에서도 마음이 움츠러든다. 대부분 대화 주제가 자녀 이야기이다 보니, '장애아의 엄마'라는 생각에 입을 다물면서 의기소침해졌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하자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지원이와 제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고 저도 장애인이 된 것 기분이에요."
예나 씨의 가장 큰 두려움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다. 지원 양이 학령기를 벗어나 성인이 됐을 때, 갈 곳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앞으로 지원이는 저하고 계속 지지고 볶으면서 살겠죠. 제 바람은 단 하나예요. 딸이 스스로 라면 한 그릇을 끓여 먹고, 쓸 돈을 직접 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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