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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예방센터', '쉼터' 이름으로 숨어든 노인 도박장 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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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아파트 상가 노인 도박장 단속 현장 풍경…경찰 단속에도 이용자 '태연'
쉼터엔 초록색 원형 테이블 수십개…입장료도 받아
경찰, 점주에 도박장개설 혐의 적용해 본격 단속

11일 대구 중구 포정동 한 불법도박장에서 경찰이 단속에 나서자 화투를 치던 노인들이 황급히 자리를 뜨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11일 대구 중구 포정동 한 불법도박장에서 경찰이 단속에 나서자 화투를 치던 노인들이 황급히 자리를 뜨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11일 대구 중구 포정동 한 불법도박장에서 노인들이 화투를 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11일 대구 중구 포정동 한 불법도박장에서 노인들이 화투를 치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대구 중구 경상감영공원 일대 노후 상가에서 '치매예방센터', '쉼터'라는 간판을 달고 입장료를 받으며 사실상 도박장으로 운영되는 곳이 수십곳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가운데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인 대상 도박이 확산하면서 경찰은 올해를 기점으로 이곳을 도박장으로 규정, 집중 단속에 나섰지만 근절은 요원한 상태다.

'노인들의 소일거리'라는 미명 하에 경찰 단속조차 무시하고 운영 중인 도박장을 들여다봤다.

◆'쉼터'에는 원형 테이블만 수십개…노인 도박장 단속 현장 풍경

지난 14일 오후 3시쯤 대구 경찰과 함께 찾은 중구 대보아파트 상가. 4층 로비 게시판에는 '치매예방센터', '쉼터' 등의 간판이 잔뜩 붙어있었다.

좁은 복도를 지나 단속 경찰관이 한 쉼터의 문을 열었다. 쉼터는 40평 남짓한 공간에 20개가 넘는 원형 테이블이 빼곡하게 들어찬 모습이었고 테이블 위에는 화투패와 천원짜리 지폐, 담뱃갑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쉼터'보다는 영화에서 흔히 보던 도박장, '하우스'에 가까워 보였다.

이날 경찰 단속에도 노인들은 무감각한 모습이었다. 단속이 일상화한 데다 도박 규모가 크지 않아 이용자에 대한 처벌이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어서다.

실제로 경찰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도 노인들은 초록색 테이블 위로 화투패를 던졌다. "하던 것 멈추고 다 나가시라"는 경찰 지시가 떨어진 뒤에야 천천히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자리에서 꼼짝 않다 점주의 설득에 마지못해 일어선 한 노인은 "내 나이가 여든인데 이제 어딜 가서 노느냐"며 경찰관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이 모든 이용자들을 쉼터 밖으로 내보내자 노인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어르신'으로 통하는 97세 노인이 지팡이에 기댄 채 마지막으로 쉼터에서 걸어 나오자 상가 주변은 약 300명의 노인들로 가득했다.

경찰 관계자는 "매주 단속을 나가는데 보통 이용자가 족히 300~400명은 된다. 엘리베이터에는 노인들이 줄을 서고, 쉼터마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빌 때도 많다"며 "단속에도 이용자들이 줄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억대 권리금까지…단속에도 판치는 노인 도박장

경찰은 대보아파트 상가를 포함해 경상감영공원 인근에서 영업 중인 노인 도박장이 44곳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 자영업자 사이에서 노인 도박장이 경찰 단속을 감수하고라도 영업을 이어갈 정도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확산세가 숙지지 않고 있다.

이른바 '쉼터'의 영업 방식은 간단하다. 노인들에게 5천원 상당의 입장료를 받고 장소를 제공해주면, 노인들끼리 돈을 걸고 화투나 포커를 치는 식이다. 간단한 먹거리나 마실거리를 팔아 부수입을 거두는 곳도 적잖다. 드나드는 노인들이 워낙 많다 보니, 별다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도 상당한 수입을 챙길 수 있는 구조다.

대보아파트 상가의 한 점주는 "임대료에 벌금까지 얹어 내도 '남는 장사'라는 소문이 돌면서 몇 년 새 비슷한 가게가 부쩍 늘었다"며 "규모가 큰 곳은 주인이 바뀌면서 억대의 권리금이 오갔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점주들은 경찰 단속에도 버젓이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경찰 단속에 걸린 점주 A씨는 이미 경찰들과 구면인 것으로 보였다. A씨는 이미 단속에 적발돼 도박장개설혐의로 약식기소당한 상태였다.

그는 경찰에 "이번 달을 끝으로 문을 닫을 테니 조금만 사정을 봐달라"거나 "동업자가 연락을 받지 않아 나도 곤란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경찰은 거듭 선처를 호소하는 점주에게 재차 단속됐다는 사실을 고지하고 자리를 떴다.

경찰 관계자는 "점주 대부분은 동종 전과가 여러 번 있는 사람들이지만, 벌금형 정도에는 아랑곳 않고 영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집행유예가 나오면 그제야 문을 닫는 식인데, 다른 사람의 명의를 내세워 계속 영업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경찰, 점주에 도박장개설 혐의 적용…올해 들어 본격 단속

경찰도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 단속에 나섰다. 도박 규모가 점당 100원 수준으로 소액이어서 도박을 한 노인들보다는 쉼터 점주를 도박장개설 혐의 등으로 입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구 중부경찰서에 따르면 2023년과 지난해 도박장개설 혐의 입건 수는 각각 한 건이었지만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77건에 달한다. 대부분이 경상감영공원 인근 노인 도박장 단속 사례다.

도박 장소 개설죄를 위반할 경우 단순 도박죄보다 더욱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형법 제247조에 따르면 영리의 목적으로 도박을 하는 장소나 공간을 개설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전문가도 근절 필요성을 강조하며 관련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류준혁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미 경찰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소액 도박을 노인들의 소일거리 정도로 여기고 방치한 결과"라며 "대부분 연금과 수당 등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은 하루 1만~2만원, 매달 수십만원만 잃더라도 생계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과거 자갈마당 등 성매매 근절 당시 중구청의 행정처분이 동원됐던 것처럼, 관계기관이 함께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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