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겨울이다. 대통령이 회사 문을 닫게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노동장관이 직을 걸겠다고 해도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다. 지난 3분기 현재 중대재해 사망자는 한달에 50명에 이른다. 선택과 집중, 핀셋대책이 필요한 시기다.
지난 11월,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70대 청소노동자가 결빙된 지하주차장 경사로에서 미끄러져 사망했다. 같은 주, 경기도 건설현장에서는 60대 일용직이 눈 쌓인 비계(고층 작업을 하기 위해 임시 설치한 가설물)에서 추락해 중태에 빠졌다. 두 사고 모두 '개인 부주의'로 정리될 뻔했다. 그러나 이는 부주의가 아니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본격화된, 시스템 부재의 결과다.
2025년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기며 통계상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이는 일터와 제도 전반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신호다. 특히 '고령 노동 일상화'와 함께 '고령 노동자의 겨울 재해'라는 구조적 위험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동자의 사고사망률은 전체 평균의 3.2배, 2023년 산재 사망자 중 47.3%로 노동시장 참여율(32.1%)을 크게 웃돈다. 겨울철 저온·결빙·폭설은 추락·미끄러짐 사고를 급증시키고, 반응 속도 저하와 기저질환이 겹치면서 단순 사고도 중증 재해로 이어진다.
연말은 '예산 마감' 시기다. 산업안전보건 예산이 11월 이후 집행이 지연되거나 이월되는 관행 속에서 교육·점검·설비 보강이 뒤로 밀린다. 특히 외주·하청 비중이 높은 현장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진다. 눈·한파 속에서도 공기와 납기 압박 때문에 작업을 멈출 수 없는 중소·건설현장에서는 사고가 나면 구조적 요인보다 고령 일용직의 '부주의'만 도마에 오른다. 문제는 시스템인데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한국은 고령층 고용률이 OECD 상위권(66세 이상 34.1%, OECD 3위)인 반면, 노인빈곤율은 최악(40.4%, OECD 1위)이다. 많은 고령자가 생계를 위해 청소·경비·택배·건설 보조 등 위험·불안정이 높은 일터로 몰린다. '단순 업무'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강도 높은 노동과 안전장치 부재가 일상이다. 겨울철 아파트 단지 청소나 주차장 얼음 제거는 정해진 실내 휴게 공간, 충분한 난방, 보호장비 없이 이루어지기 쉽다. "위험하면 그만두라"는 말은 곧 빈곤을 감수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고령자고용촉진법, 산업안전보건법, 노인복지법이 존재하지만 서로 단절된 채 작동해 '고령 노동자의 작업환경'을 통합적으로 보지 못한다.
일부 건설업에서는 현장 노동자 중 60세 이상 비중이 30%를 넘지만, 작업장 설계·안전기준은 여전히 건강한 30~40대를 기준으로 한다. 고정되지 않은 발판, 경사면과 불규칙한 동선 등은 고령 노동자에게 명백한 추락 유발 구조다. 신체 특성과 질환·약물 복용을 고려한 보호구, 작업시간 유연화, 동선 최소화, 야간·한파·장시간 서 있기 제한 같은 조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일본은 2020년 '고연령 노동자 안전위생 가이드라인'을 통해 연령별 체력 평가·작업환경 개선·건강관리를 의무화했고, 독일은 고령 노동자 비중이 높은 현장에 '에이지 매니지먼트' 인증제를 도입해 안전설비 개선 시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한국은 이런 시스템이 전무하다.
정부는 우선 '고령 노동의 계절 리스크'를 공식 산업안전 정책 틀 안에 명시해야 한다. 고령 노동자 비중이 30%를 넘는 업종·현장을 대상으로 겨울철 특별점검, 한랭·결빙 위험에 대한 작업중지·보호구 지급 기준, 고령자에게 현저히 위험한 작업의 '작업 불가 기준'과 대체 작업 제공 의무를 마련해야 한다. 산업안전 예산의 계절적 집행 편차도 통제해야 한다. 안전 예산의 일정 비율을 분기별 의무 집행하도록 하고, 미집행분에는 사후 감사와 페널티를 연동해야 한다. 원청 대기업은 하청 현장의 고령 노동자 안전을 관리 평가 지표에 포함하고, 지자체·공공기관은 '고령친화형 작업장 개선' 사업을 발주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끝으로 '고령 노동 안전지수'와 '연령별 재해율 공개'를 정례화해 연령별 산재 발생률·사망률, 업종별 고령자 비중과 재해 유형을 통합한 지표를 매년 공표하고, 평가와 인센티브를 이 지표에 연동해야 한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고령 노동'이 본격화되는 첫 겨울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노동존중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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