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청의 핵심 예산을 다루는 예산팀이 창문 하나 없는 지하 1층의 5평 남짓한 공간에서 반년 가까이 예산을 짜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간 5천억원 규모의 군 살림을 설계하는 부서가 '밀실'에 갇혀 업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군청의 공간 운영과 행정 효율성을 둘러싼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예산 편성 현장 영상에는 청사 배치도상 '예산결산감사실'로 표시된 공간이 등장한다. 이름만 보면 넓은 상황실이 떠오르지만, 실제 모습은 책상 세 개가 겨우 들어가고 사람이 서면 벽이 닿을 정도의 비좁은 방이다. 자연광은커녕 외부와 연결된 창문도 없다. 옆 회의실도 5평 정도로, 문지방까지 서류가 쌓여 있다.
예산팀 직원들은 평상시엔 다른 사무실에서 근무하지만, 예산철만 되면 이 지하 공간에서 1년 중 최소 6개월간 상주하며 작업한다. 한 직원은 "하루 종일 햇빛을 본 기억이 없다"며 "환기도 잘 안 돼 밤샘 근무가 이어지는 시기엔 피로감이 급격히 쌓인다"고 말했다.
◆겉은 경북 최대급 '초현대식'… 속은 공간난에 청사 밖으로 쫓겨난 부서들
봉화군청은 지난 2003년 200억원 넘는 예산을 들여 준공된 경북 최대 규모 청사였다. 부지 5만5천여㎡, 주차 330대, 공원·광장까지 갖춘 외관은 지방청사 중에서도 손꼽힌다.
그러나 내부는 오래전부터 공간난에 시달렸다. 2018년 조직개편 이후 사무공간이 부족해지자, 군은 녹색환경과와 전원농촌개발과를 폐교된 봉화여중·고 건물로 내몰아 임시로 운영해왔다. 민원인과 직원들은 한동안 이 불편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이를 해결한다며 군은 지난 2021년 31억원을 들여 지상 2층 규모의 증축공사를 완공했다. 그럼에도 예산팀은 여전히 지하 1층 밀실에 남겨진 상태다. 예산철이 되면 야근과 주말 근무가 반복되는 부서 특성상, 열악한 환경은 고스란히 업무 효율과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 업무는 정확성과 집중이 핵심… 지하 밀실은 행정 설계 실패"
전문가들은 예산 부서의 공간 배치는 행정의 기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지방행정 전문가는 "자치단체 예산은 정확성과 투명성이 핵심인데, 창문도 없는 지하 밀실에서 장시간 근무한다는 건 조직 설계의 실패"라며 "자연광 유입도 없는 환경은 업무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스트레스를 높이는 구조"라고 말했다.
지역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봉화읍 주민 박모(59)씨는 "겉은 으리으리한데 속은 구멍 난 행정의 민낯"이라며 "청사를 새로 짓고 증축까지 했는데 예산팀이 지하로 밀려난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봉화군 "검토하겠다"… 직원들 "땜질식 개선으론 안 된다"
봉화군 관계자는 "예산팀 근무환경에 대한 내부 요구를 알고 있다"며 "공간 재배치를 포함해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직원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행정 시스템 문제"라는 목소리가 더 크다. 한 직원은 "예산은 군정의 방향과 민생의 흐름이 결정되는 작업인데, 지금 같은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집중이 어렵다"며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천억원 규모의 군 살림을 책임지는 예산팀이 더는 햇빛 한 줄기 없는 지하 밀실에서 밤샘하며 '봉화군의 1년'을 설계하지 않도록, 청사 공간 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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