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조견문(弔犬文)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심강우 시인

심강우 시인
심강우 시인

"얘 목단아, 밥 먹어야지!" 말하고나서 나는 아차, 입술을 깨물었다가 실소했구나. 네가 세상을 떠난 걸 그새 잊었구나. 보다시피 매사 흐리마리해졌단다. 낼모레면 여든, 낫살 먹은 게 죄지 어쩌누?

어줍게 눙치고서는 봐라 목단아, 네 밥그릇을 들고 있는 내가 보이느냐? 겅중겅중 뛰어오르듯 나를 반기는 네 모습이 오늘따라 왜 이리 사무칠꼬. 세밑이 가까워져서인가, 나달나달해진 목줄에 내 손목을 걸어보는 것이며 방 소제하다 주운 네 털오리를 금실인 양 건사한 심사는 또 뭐라는 것이냐.

목단아, 다시 말하건대 너는 내 자식이기도 했거니와 세상 둘도 없는 동무였느니. 하긴 내 그런 맘을 진즉에 거니챘으니 그리 무람없이 굴었을 테지. 네가 없고 보니 내 속엣것을 주워섬기기가 부질없다. 미상불 궂은비라도 내려 내 입에서 타령조의 언사가 주저리주저리 나올작시면 영특한 넌, 그게 내 배에서 나온 아이를 이르는 말이라는 걸 알았을 터.

태무심하게 지내다 명절이면 지전 몇 장이 든 봉투를 쥐어주곤 휭하니 돌아서던 아이. 내가 그 아이 얘기를 되풀이할라치면 너는 마뜩잖은 눈으로 희번덕거리다 외면하지 않았더냐. 아슬아슬 실오라기 모양 이어지던 소식마저 끊긴 지 수년째. 의지가지없이 시간의 말뚝에 매여 빙빙 돌던 와중에 너를 만난 것도 내 분복이렷다.

목단아, 내가 그날 너를 거두지 않았다면 엄동설한에 너는 네 몸을 상자처럼 구겨 떠날 요량이었을는지. 손수레에 너를 태우고 돌아오던 저녁에 본 송이눈이 마치 목화꽃 같았다는 말을 지금에야 하는구나. 폐지 판 돈과 나라에서 보태주는 돈이랬자 빤하다만 나는 기꺼이 내 섭생에 너의 명줄을 보탰으니 내가 밟아 온 이력 중 그보다 장한 일이 또 어디 있을꼬.

그랬다만, 인제야 실토하거니와 손수레 한쪽에 너를 태우고 골목을 걸을 때나 네가 눈 변을 치울 때의 내 마음에 대해선 차마 말하지 못했구나. 어린것을 목말 태우고 조심스레 걷던 지아비 얘기는 둘째치고 부드러운 휴지로 네 엉덩이를 닦다가 그만 울컥해져선 휴지 한 장을 또 꺼내던 그 마음을 네가 어찌 알겠느냐. 한손으로 네 엉덩이를, 또 한손으론 내 눈가를 닦았더니라.

내 새끼, 몽글몽글 냄새가 호박죽보다 달던 내 새끼가 눈 황금빛 똥이 어찌 그리도 눈에 밟히던지. 장성한 내 새끼, 지금은 어디서 밥을 굶고 있진 않는지…. 목단아, 그런 내 마음을 안다는 듯 너는 지린내 나는 내 손을, 먼지에 찌든 내 얼굴을 핥아주지 않았더냐. 그런 너를 잃은 내 마음 나도 모를레라.

인제 나는 빈 상자가 된 것만 같구나. 사람들이 나더러 독거노인이라고 할 적마다 아니라고, 살뜰히 섬기는 아이 하나 있다고 했는데 그예 허사가 되었구나. 마냥 느꺼워지는 이 내 가슴을 목단아, 하염없이 네 이름을 부르며 식히려는구나.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이재명 대통령은 3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에 억류된 한국 국민에 대한 질문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관련 정보를 전달...
농협중앙회는 정기인사를 통해 주요 지역본부장과 집행간부를 대폭 교체하며, 전경수 대구본부장은 상무보로 승진하고 김주원과 손영민은 각각 경북본부장...
경남 창원시의 모텔에서 발생한 흉기 사건으로 10대 남녀 3명이 숨지고 20대 남성 1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20대 남성이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