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12월 금리 인상을 시사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에선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가 지난 1일 이달 중 금리 인상에 나설 수도 있다고 밝혔는데요.
BOJ 정책 금리 영향을 많이 받는 2년 만기 일본 국채 수익률이 우에다 총재 발언 뒤 1%를 돌파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처음입니다.
일본의 매파적 신호는 전 세계 금융 시장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 속에 회복세를 보였던 금융시장은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간밤 반등에 성공한 비트코인이 9만2000달러선을 회복하긴 했지만 지난 1일(현지시각) 비트코인은 8만5000달러 밑으로 떨어지며 급락세를 보였고, 닷새 연속 상승 흐름을 보이며 반등하던 뉴욕증시도 주춤하는 등 위험자산 전반의 투자 심리가 위축된 바 있습니다.
글로벌 채권금리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주 중반 4%를 밑돌았지만 지난 1일엔 전일 대비 0.08%포인트 띈 4.095%로 마감하며 한 달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국고채 금리도 마찬가지 흐름입니다. 국고채권 2·3·5·10·20년물의 채권금리는 지난 1일 기준 나란히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매뉴라이프 존핸콕 인베스트먼츠의 공동 최고투자전략가 맷 미스킨은 "국제 채권 시장이 12월 금리 인상을 준비 중이라는 BOJ의 매파 신호로 나비효과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 들었지만, 시장에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여전합니다.
캐리 트레이드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국가 통화를 빌려 더 높은 기대수익률을 보이는 국가의 주식이나 채권 등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자본 손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죠.
0%대 안팎의 저금리를 장기간 유지한 엔화를 빌려 미국 기술주 등 성장 자산에 투자된 것이 엔 캐리 트레이드입니다. 일본의 낮은 금리 탓에 높은 금리를 주는 해외 시장으로 빠져나갔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BOJ의 금리 인상으로 다시 일본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하루 만에 코스피가 8.7% 폭락했던 지난해 여름 '블랙먼데이' 당시에도 BOJ의 기습 금리 인상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가 대거 청산되며 글로벌 금융 시장이 큰 충격을 안긴 바 있습니다. 당시 국내 증시는 물론 글로벌 증시가 동반 폭락한 뒤 그야말로 격동의 한 주를 보냈는데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려면 지난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해 9월 22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당시 서독), 일본 재무장관이 미국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플라자 호텔에서 만나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하락시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플라자 합의'를 맺습니다. 이 합의를 통해 달러화의 가치는 떨어졌고 나머지 국가 통화의 가치는 상당폭 올라갔습니다.
평가절상의 폭이 가장 컸던 국가는 단연 일본이었습니다. 합의 발표 다음 날 엔화 환율은 달러당 235엔에서 215엔으로 떨어졌고, 1년 후에는 달러당 120엔대에서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엔고로 인한 불황을 염려한 일본은 저금리 정책을 시행했고 이는 부동산과 주식 투기를 부추겨 거품 경제를 만들었습니다. 플라자합의는 잘 나가던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진 계기가 됩니다.
저금리가 지속되는 가운데 일본 개인 투자자들은 낮은 이자로 대출을 받아 외화를 사두거나 금리가 높은 나라의 예금·자산에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투자자들은 '와타나베 부인(Mrs. Watanabe)'이라고도 불렸는데요. 와타나베라는 성(姓)이 흔하고 투자자들 중에 주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와타나베 부인은 물론 전 세계 헤지펀드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활용해 높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통화부터 국채,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까지 다양한 자산에 투입됐으며, 특히 헤지펀드를 중심으로 미 기술주에 상당 부분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엔 캐리 자금의 전체 규모는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렵지만 시장에선 최대 20조달러(약 2경7500조원) 수준으로 추산합니다.
막대한 자금이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년 블랙먼데이 같은 글로벌 증시 폭락을 일으킬 정도로요. 당시 증시의 폭락은 엔 캐리 트레이드에 시장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준 것이기도 합니다.
엔 캐리 청산 공포에 떨었던 시장은 다시금 긴장하고 있습니다. 월가에서는 인공지능(AI) 거품론과 미국 경기 불안이 여전히 금융시장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금리 인상까지 연말 산타 랠리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관측합니다. 지난 1일 연준이 3년 6개월 만에 양적긴축을 중단했음에도 정작 뉴욕증권 시장이 일제히 약세를 보인 점도 이같은 우려를 반영한다는 분석입니다.
앞서 월가의 전략가들은 BOJ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에 대해 잇달아 경고를 낸 바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건 연준의 정책금리 경로가 아닌 BOJ 행보라고 보고 있습니다.
크레딧사이트의 잭 그리피스 투자등급·거시전략 책임자는 "미국 금리가 예정된 흐름처럼 지속적으로 내려간다는 안도감이 시장에 퍼져 있었다"며 "일본발 금리 변수는 그 전제를 흔들 수 있는 요인이 여전히 많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상황이 작년과는 다르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블랙먼데이 당시 BOJ의 금리 인상은 시장이 예상하지 못한 기습 인상이었다면 지금은 BOJ가 사전 경고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최근 글로벌 증시가 AI 거품 우려 등으로 조정을 거치고 있다는 점도 시장의 충격적인 급락 가능성은 낮게 점치는 이유입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지난해엔 엔화가 과도하게 저평가된 상황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며 "이번엔 오히려 엔화와 동조하는 원화 강세, 반도체 업종의 실적 기대 등이 맞물려 해외 자금 유입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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