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일(親日)한 것은 표면상 문제이고 나는 나대로 친일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 것이외다."(소설가 이광수)
광복 80주년의 2025년도 역사 속으로 저물어간다. 올 1월부터 시작된 80주년 관련 뭇 행사를 지켜보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광복 자료를 살폈다. 그런데 한국현대사료DB의 친일파 관련문헌이 눈에 띄었다. 이들 문헌에는 1949년 발행된 자료집인 ▷민족정기의 심판 ▷반민자 대공판기(反民者 大公判記) ▷반민자죄상기(反民者罪狀記) ▷친일파군상(親日派群像)이 들어 있었다.
이들 자료에는 '뜻밖의 광복'을 맞아 일제강점기 일제의 앞잡이로 주구(走狗) 역할을 했던, 친일파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체포, 재판 등에 대한 당시 기록과 발언의 일부가 담겨 있었다. 이 자료집에는 처절하게 반성하는 지식인의 모습, 뻔뻔스럽게 변명하고 오히려 애국자로 자처하는 등 친일파 인물의 적나라한 모습이 실려 있었다.
광복 후 3년이 지나고 1948년 9월 22일 공포된 '반민족행위자처벌'에 따라 친일파 즉 소위 '반민자(反民者)' 처벌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같은 해 12월 23일 구성되면서 이듬해 1949년 1월부터 특위 활동이 시작되고 친일파들이 줄줄이 붙잡혀 민족의 이름으로 재판을 받았지만 뒷날 친일 청산은 이승만 정부 방해로 좌초되고 말았다.
이후 굴곡진 현대사의 흐름 속에 독립운동 애국지사 후손과 친일파 후손은 물리적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한 울타리에서 같은 국민으로 뒤섞여 살게 되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이 후손에게 물려준 가난, 무학(無學), 고통이란 무형의 굴레는 친일파가 후손에게 물려준 부(富), 배움, 안락이라는 유형의 유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든 삶의 대물림 족쇄가 되었고,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진리(?)로 이어졌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팍팍한 삶이 이처럼 친일파 후손들과의 풍요롭고 안락한 일상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사실은 실제 수차 실시된 다양한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필자가 올해 대구에서 열린 광복 80주년 기념 각종 행사에서 만난 후손들은, 생활은 비록 어려울지라도 광복된 대한민국, 독립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으신 선조들의 헌신에 대한 자긍심, 행사 참여 열기, 관심도는 드높기만 했다.
광복회 대구시지부 회원 400여 명의 경우, 현재 평균 연령이 80대에 이를 만큼 고령이다. 하지만 1월부터 11월까지 크고 작은 각종 광복 80주년 기념 및 추념 행사가 열릴 때는 남다른 참석 의지를 보였다. 장소를 불문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가능하면 한두 행사에는 참석하겠다는 열의를 불태우곤 했다. 그래서 광복회 대구지부가 (공동)주최하는 어떤 행사에든 100명 안팎의 어르신 회원들이 몰려 성황이었다.
얼굴 보기 힘든 인기 가수 출연 음악회도 아니고 저명 인사의 대중 강연회와도 거리가 먼, 딱딱하나 의미있는 숱한 광복회 행사에 빠듯한 하루 시간을 아낌없이 내주신 대구의 400여 광복회원분들께 광복 80주년을 보내면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광복회 모임에 기꺼이 함께 자리를 해주신 대구시민들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내년 2026년 새해에도 힘겹지만 자긍심으로 살아가는 대구의 광복회원들에 대한 대구시민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리며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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