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한 관료가 자신이 평생 거쳤던 근무지를 화가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한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15점 중 한 점이다. 숙천제아는 '거쳐 온 여러 관청'이다. 40여 년 관직 생활 동안 서울에 살던 그는 목릉, 제용감, 호조, 종묘서, 사복시, 선혜청, 종친부, 도총부, 공조 등 중앙 관청으로 출근하기도 했고 지방관으로 나가기도 했다.
지방은 평안도 영유현, 황해도 재령군, 황해도 서흥부, 전라도 장성부, 경기도 김포군, 황해도 신천군 등 6곳이다. 이곳들이 모두 수준 높은 기록화로 그려졌다. 지방관으로 나갔을 때의 그림들이 더욱 의미와 재미가 있다. 각 고을의 군현 지도를 바탕으로 하면서 실경산수의 요소를 결합한 독특한 지형도식 회화이자 건물배치도다.
'숙천제아도'는 오른쪽에 부임한 관청과 지역을 밝히고 중앙 관청은 자신이 맡았던 업무를, 지방은 서울과의 거리 등 위치 정보를 기록했다. 이 화첩의 7번째 그림인 '재령군'을 보면 서울에서 460리 거리에 있고, 감영이 있는 해주에서 120리, 병영이 있는 황주에서 90리, 수영이 있는 옹진에서 160리 떨어져 있다고 했다. 말미에 재령군수로 임명받은 날짜와 업무를 시작한 날짜를 써놓아 이 그림이 어디까지나 그 자신을 위한 개인적 기념물임이 뚜렷하다.
그의 근무지 재령군 관아는 장수산 주봉 아래 위엄 있게 그려졌고 그 앞으로 딸린 건물이 여럿 자리 잡았다. 관아 오른쪽엔 동재와 서재를 거느린 향교가 있고, 왼쪽으로 '옥(獄)'이 그려져 있다. 옥은 담장이 유일하게 둥글다. 한 지역이 평화로우려면 교육(교화)이 중요하고 처벌을 위한 감옥 또한 필수적이리라.
'재령군'은 재령의 주요 시설물을 한눈에 보여주는 회화적 지리지이기도 하다. 화폭의 오른쪽 위 고갯마루에 기와집을 그리고 이름을 써놓은 '성황당'과 '여단(厲壇)'이 있고, 관아 왼쪽의 '사단(社壇)'은 일종의 종교 시설이다. 관아를 둘러싼 노란 초가지붕들 가운데 '상장대(上場垈)', '하장대(下場垈)' 두 군데 장터가 보이고 주요 도로는 붉은 선으로 표시했다.
왼쪽 아래에 '남거해주(南去海州)'로 해주로 가는 길임을 표시한 위로 '오리정(五里程)', '유정(柳亭)'이 있다. 오리정은 읍치로부터 5리, 약 2킬로미터 되는 곳이라는 표시다. 감사나 사신이 오갈 때 수령이 나가서 영접하거나 배웅하는 지점이었다.
이 그림을 그리게 한 주인공은 청주 한씨인 하석(霞石) 한필교(1807~1878)다. 그는 30대에 자신의 근무지를 그림으로 기록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평생에 걸쳐 꾸준한 정성으로 '숙천제아도' 화첩을 완성했다. 관아 건축의 공간 구조와 문화 경관을 알려주는 이 그림들은 그 자신과 후손을 위한 일이었지만, 개인과 가문을 넘어 우리 모두의 문화적 자산이자 한국사의 기록물로 남았다.
대구의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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