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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품은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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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현 영화 다큐작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영화 포스트

영국 비밀 정보부 국장인 '컨트롤'은 서커스(영국 정보부의 별칭) 내부의 고위 간부 중 하나가 -통상 스파이 세계에서 '두더지'라 일컫는- 이중첩차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더지의 정체를 알고 있는 헝가리 장군의 망명을 돕기 위해 스캘프헌터(암살 및 회유 전담 요원)인 '짐 프리도'를 부다페스트로 급파한다.

헝가리 장군을 만난 짐은 작전의 비밀이 소련 측에 이미 누설되었음을 눈치채고 현장을 떠나려다 총격을 당한다. 이에 컨트롤은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그의 오른팔이었던 '스마일리'도 함께 쫓겨난다. 그러나 은퇴 후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스마일리에게 정부는 다시금 은밀한 진상 조사를 명령하고, 그는 현장으로 복귀한다.

'존 르 카레' 동명 소설의 방대한 분량을 127분으로 압축해야 하기에, 영화는 가장 '에센셜'한 조각들을 선택하고 끼워 넣어야 한다. 그런데 영화는 원작에선 언급조차 없는 부분을 기어코 창조해서 오프닝에 배치한다. 바로 스마일리가 안경을 새로 맞추는 장면이다. 입장과 상황이 달라졌으니 시각도 바꿔야 한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후 그는 새로 맞춘 안경을 벗지 않기 위해 수영할 때조차 평영으로 한다.

몇 명만 모여도 파벌이 생기는 것,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조직의 생리다. 그러면서 조직 내부의 구성원들 상호 간에 정치가 발생한다. 때로는 조직이 크고 이해관계가 복잡할수록 외부 세력까지 끼어들어 이런 파벌 간의 내부 정치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영화의 한 장면.

실제로 조직을 이끌고 운영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정작 그 사람이 자리를 지키면 불편해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조직 안에서 정치만 잘하는 무능한 자를 앞세워서 핵심 인재를 밀어낸다. 그렇게 조직이 엉망이 되어 버리면 은밀히 접근해서 조직을 통째로 집어삼킨다. 이런 과정에서 흔히 정치만 밝고 실무엔 어두운 자는 완장 하나 차고서 누군가의 허수아비 역할을 충실히 한다.

큰 힘을 가진 조직이나 사회에서 기실 어디서나 이런 정치적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능력은 없는데 정치만 능한 자들이 활개를 치는 풍경이 더는 낯설지가 않다. 무능하지만 정치력 하나로 버티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현재 우리나라 국정의 모습을 매일같이 보고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무언가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배신이 일상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진실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고독하다. 스마일리는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의미를 파악하려 애쓰면서, 그 음울하고 냉소적인 과정에서 무능과 악의를 흘려보내면서, 뜻이 맞는 동료를 조용히 그리고 단단히 규합하면서, 끝내는 조직의 부패를 근절하고 다시금 재정비하는 생존 지침서를 보여준다.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냉전 시대 속 냉혹했던 스파이의 삶이 2020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생생한 삶의 매뉴얼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훌륭한 이야기는 수용자의 경험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항상 시대를 넘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새해도 벌써 한 달이 다 지났다. 분명 굳은 각오로 새로운 결심을 세웠지만, 아직 뭉그적거리며 지지부진한 상태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를 진척시키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아직 감동의 여진이 남아 있을 때, 나도 새로운 안경을 맞추러 나서야겠다.

김유현 영화 다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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