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기획·제작한 책 <지상대구>는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을 통해 대구가 어떤 길을 걸어 지금의 도시가 됐는지를 따라간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4부에 걸쳐 풀어낸다. 3부는 근대 산업의 태동부터 공업 단지 조성, 상업 중심지의 변화, 그리고 주거와 산업의 재배치까지 경제 활동의 공간적 변천사를 다룬다. (편집자 주)
지금의 대구 '먹거리'는 무엇일까. 잘 팔리는 음식 메뉴가 아니라, 대구를 지탱하는 주요 산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막 태동하기 시작한 IT 산업을 떠올릴 수도 있고, 첨단 의료산업이나 서비스업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명확하게 언급하기 어려운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먹거리'가 명확했다. 안경, 염색, 자동차 등 상공업 전반이 대구의 기둥이었다.
1930년대 대구는 상공업의 중심이었다. 당시 인구는 급속도로 늘어 10만을 넘기는데, 이 중 30%가 상공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당시 대구상공회의소가 발행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대구 내 공장은 300여 개에 달했고, 등록 절차를 마친 회사는 600여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인구가 늘수록, 상공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덩달아 늘었다.
이들 회사는 대구의 중심부인 대구역 앞에 포진했다. 북성로, 대안동, 동성로, 중앙로 이곳저곳에 회사가 세워졌다. 당시 지도인 '대구부상공안내도'에 따르면 대구역 앞에 회사가 모여있고, 대구역 건너나 남측으로 가면 갈수록 건물 밀집도가 떨어졌다.
대구역 앞 광장 역시 상공업의 장으로 활용됐다. 1928년 지어진 경상북도 상품진열소는 경상북도 지역의 생산품과 가공품을 홍보하고, 판매를 북돋기 위해 세워졌다. 본래 경상북도 청사 내 뇌경관에서 하던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다만 실제로 진열됐던 상품 대다수는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들이었다.
전쟁 기간에는 미군 시설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후 기능을 회복해 1970년때까지 상품 전시와 판매를 이어왔다. 1985년 '라이프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건물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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