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동창회는 한때 지역사회에서 가장 견고한 인적 네트워크였고, 세대를 관통하는 연대의 상징이었다. 선후배 간 유대는 일종의 생활문화였다. 그러나 지금, 그 결속력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개인의 삶을 중시하며, 동창회 참여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개인화의 흐름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2025년 기준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수는 약 2천300여 개, 재학생 수는 약 110만 명에 이른다. 매년 수십만 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지만, 이들이 조직적 동창 네트워크로 이어지는 비율은 갈수록 낮아진다.
외국의 사례도 다르지 않으나 주목할 점이 있다. 일부 명문고 동창회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커뮤니티 재구성, 장학사업 및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한 실질적 연결 강화로 새로운 활로를 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단순한 참여율 저하가 아니다. '공통의 기억과 정체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고교 시절은 소년의 틀을 벗고 청년으로 진입하는 결정적인 시기다. 대학보다 순수하고, 이해관계보다 감정이 앞서며, 연대가 자연스러운 시절이다. 같은 교정에서 같은 교가를 부르고, 같은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고, 같은 교복을 입었던 경험은 그 자체로 강력한 공동체적 자산이다.
고교 대항 축구, 야구 등 체육대회에 재학생과 교사, 동문이 함께 뒤섞여 응원가와 교가를 목청껏 불렀던 때가 있었다. 그 장면은 단순한 스포츠 응원을 넘어, 세대를 잇는 공동체 의식의 현장이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크게 줄었다.
고교동창회는 과거의 유산에 불과한가, 아니면 미래의 자산이 될 수 있는가. 필자는 후자라고 확신한다. 다만 그 전제는 '형식의 유지'가 아니라 '내용의 혁신'이다.
첫째, 실질적 가치 제공 중심의 동창회로 전환해야 한다. 장학사업·진로 멘토링·창업 및 취업 네트워크 등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후배에게는 장학금과 멘토링을, 선배에게는 우수 인재 확보와 사회적 영향력 행사의 기회를 제공하는 '상호 호혜적 모델'이다.
둘째, 디지털 기반의 상시 연결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폐쇄적 회원제 운영을 넘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동문 간 소통을 일상화해야 한다. 이미 업종별 소모임이나 스타트업 투자 네트워크 형태로 동문회의 성격이 변모하고 있기도 하다. 정보와 이야기가 흐르는 곳에 공동체는 다시 살아난다.
셋째, 상징과 감성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교가와 응원가, 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기념하는 데 그치지 말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단체 교가 부르기 영상 공모, 동문 인터뷰 기반의 온라인 콘텐츠 발행 같은 시도는 세대 간 공감대를 넓히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고교동창회의 위기는 우리 사회 결속력과 직결된 문제다. 고교라는 공통의 뿌리를 통해 형성된 연대는 직장·이념·세대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드문 사회적 자산이다. 이 자산이 약화된다면, 사회 전체의 연결망 중 소중한 하나를 잃는 것이다.
동창회의 부흥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작업이다. 고교 시절의 그 순수한 연대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그것은 한 학교의 부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결속력을 회복하는 불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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