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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생바위 철거만이 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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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 스님(동화사 기획국장)

범상 스님(동화사 기획국장)
범상 스님(동화사 기획국장)

우리 민족은 인류사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역사와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 당장 눈앞을 보자. BTS서울공연으로 지구촌에 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문화권을 가리지 않고 눈물바다를 이루는 등 K-문화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란전쟁의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IT기술력과 첨단무기 등을 앞세워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유지하며 미·중·러의 간섭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이로써 자원이 0에 수렴한 국토, 식민지를 딛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유일한 나라라는 신화는 빛을 잃은 옛이야기가 되고 있다. K-문화의 바탕에는 일본에 주권을 빼앗겼던 35년 동안 국채보상운동, 3.1만세운동, 임시정부와 독립군 등의 저력이 살아 숨쉰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계곡 정비사업 지시로 팔공산이 지켜내어야 할 소중한 민중의 역사인 '기생바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근·현대 팔공산의 산 증인인 김태락 선생은 '팔공산에 살어리랏다'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1930년대 왜경서장이 지역유지들과 (촛대 바위)계곡에 야유회를 왔고, 데리고 온 권번기생(요즘의 연예인)인 수선(水仙)을 창기 다루듯 했다. 이에 저항하여 바위에 올라 투신으로 자존을 지켰다. 당시 일제의 감시로 수선의 순절은 선양되지 못했지만 그 정신은 이어져 오늘날까지 '기생바위'라 불린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렀고, 수선의 시신을 수습했던 채학기 씨(해방 후 공산면장을 역임)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내팽개친 민중의 애환은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수많은 시민이 찾아 마음을 달램으로서 다시 한 번 조명되었다.

수선의 순절은 당시 전국에서 펼친 기생들의 독립운동과 무관하지 않다. 그 대표적 인물은 대구 국채보상운동에 불을 지폈던 기생 앵무 염농산이다. 염농산은 국채보상수금소를 찾아가 "국민의 의무로 국채 1천300만원에 대해 만분의 일이라도 출연할 것이나 여자가 감히 남자보다 더 낼 수가 없어서 100원을 내놓으니 누구든지 남자가 천원, 만원을 출연하면 죽기를 각오하고 따라 하겠다"고 했다. 염농산의 기개에 국채보상운동을 발기한 서상돈·정재학 등은 얼굴을 붉히며 각각 만 원씩을 내놓기로 결의했다고 황성신문이 전하고 있다. 이후 현재 대륜중·고등학교 전신인 교남학교 살리기에 앞장섰으며, 매년 물난리를 겪는 성주 용암의 '두리 방천'을 쌓았고 마을 사람들은 공덕비를 세웠다. 당시 기생들은 스스로 천업(賤業)에 종사하고 있다하면서도 우리로서 하나 되어 나라를 지키는 굳건한 기개를 보여주었으며, 수선 역시 선배들의 영향을 받아 나름의 방식으로 국권 회복에 목숨을 던졌다.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역사를 써내려가면서도, 역사 문화의 선양에 있어서는 군주제로부터 이어지는 과거의 타성에 젖어 민초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서 기생바위에 새겨진 민중 신앙마저 대책 없이 철거하겠다는 정비사업은 민중의 역사를 영원히 매장해 버리는 우매한 일이다. 잡초 없는 들판을 생명 없는 사막이라 한다. 민초들은 민초들의 방식으로 이 땅을 푸르게 지켜왔다. 그래서 초 한 자루에 가정의 안녕과 자식의 미래를 기도하는 민중의 마지막 희망을 지켜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기에 덧붙여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기생바위를 인정하고 관리해 왔던 국가기관들에게 이번 기회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팔공산의 민중역사로서 재조명 할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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