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나갈 거 같아,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전해줘."
지난 3월 20일 대전 안전공업 화재 당시 한 노동자가 여자친구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이 불로 14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쳤다. 점심시간 휴식중 불이 나 대피할 겨를도 없었다.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골절상을 입은 사람도 50명이 넘었다. 아리셀 참사로부터 약 1년 9개월 만에 또다시 대형 산업재해가 반복된 것이다. 2024년 6월 화성 아리셀 공장에서는 노동자 23명이 숨졌다. 18명이 외국 국적자였고, 17명은 여성이었다.
인력업체를 통해 간접 고용된 노동자 다수가 공장 2층에서 대피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위험은 예고돼 있었다. 수년 전부터 유사 화재 사고가 여러차례 발생했음에도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참사 석 달 전 화성소방서가 인명 피해 우려를 경고했음에도 아무 조처가 취해지지 않았다. 대전 안전공업도 구조는 같다. 15년간 화재로 소방 당국이 이 회사에 출동한 사례가 7건이나 됐다.
비용 문제를 이유로 안전 투자와 개선 요구가 반려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두 공장 모두 샌드위치 패널 구조물이 피해를 키웠다. 같은 재료, 같은 구조, 같은 참사. 치명적인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 29번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의 사소한 이상 징후를 무시했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두 참사 모두에서 그대로 적중했다.
이 같은 비극 앞에서 우리 사회가 내놓은 처방은 어김없이 하나였다. 더 센 처벌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바로 그 산물이다. 2022년 1월 시행된 이 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부과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그 문제의식은 정당했다. 매해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는 현실에서 처벌 강화는 불가피한 사회적 요구였다.
그러나 법의 실상은 어떠한가. 산재 사망자는 2023년 2,016명에서 2024년 2,098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1,252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73%가 수사 중인 미해결 상태였다. 무죄 비율은 10.7%로, 일반 형사사건의 3.1%에 비해 약 3배 수준이었고, 징역형이 선고된 47건의 형량 평균은 1년 1개월이었다. 이 가운데 85.7%가 집행유예 처분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법정의 현실은 더욱 선명하다.
광부 사망 사건으로 공기업 대표 최초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은 전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경영책임자로서 취한 여러 조치들을 종합할 때,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위반과 사망 사이에 요구되는 이중의 인과관계 법리는, 처벌의 문턱을 높이고 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의 구조적 딜레마다. 현행법이 기업 경영책임자 처벌에만 집중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은 경영자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명시한 거의 유일한 나라다. 처벌의 위협이 경영자를 움직이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안전을 내재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법적 면책의 서류를 쌓는 방향으로 흐른다.
공포는 순응을 낳을 뿐, 문화를 바꾸지 못한다. 1972년 영국 로벤스 보고서는 반세기 전에 이 진실을 직시했다. 정부가 정한 규정을 준수하는 외재적 규제에서, 사업장 스스로 위험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자기규율로의 전환이 핵심이었다. 위험성평가를 산업안전의 중추로 삼고 노동자 참여를 제도화하는 이 전환은 1974년 영국 산업안전보건법의 근간이 됐고, 이후 영국의 산재 사망률은 수십 년에 걸쳐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한국의 현실은 어디에 있는가. 안전 투자를 가치가 아닌 비용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왜곡된 시장 환경, 그리고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처벌 위주의 규제 환경이 근본 원인 이다. 이 구조를 바꾸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위험성평가의 실질화, 노동자 참여의 제도적 보장, 그리고 법 적용 대상 밖에 있으면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재정·기술·교육 지원의 확대다.
이제는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갈등과 위험을 일상적으로 관리하는 조직문화를 만들 것인가'로 물음을 바꿔야 한다. 답은 노사간 실질적 참여와 협력을 활성화하고 확대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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