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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심강우]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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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우 시인·소설가

심강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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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뒤셀도르프의 치매요양원 근처엔 가짜 버스정류장이 있다. 요양원을 벗어난 노인들을 복귀시키기 위한 일종의 회유 시설이다. 뭔가 가슴을 억누르는 갑갑함을 못 견뎌, 불쑥 떠오른 자식들 얼굴이 그리워 무작정 요양원을 나간 노인들은 사무치게 뭉쳐진 감정의 시냅스를 이어줄 합리적 이성의 뉴런과 그 모든 걸 조정하는 컨트롤타워가 없기에 길을 헤매기 일쑤다. 인지능력이 극도로 저하된 노인들이 버스 표지판에 반응한다? 깊이 새겨진 어떤 감각은 상황적 층위에 상관없이 표출될 수 있다는 말이겠다.

시설을 벗어난 노인은 우왕좌왕 헤매다 버스 표지판을 발견한다. 버스 시간표도 있어 외관상 진짜 버스 정류장 같다. 표지판 아래 벤치에 앉은 노인은 버스를 기다린다. 길 건너편 나무를 쳐다보다가 하품을 한다. 떨어지는 꽃잎을 보다가 까닭 없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창에서 튕겨 나온 빛이 무슨 예시 같기도 하다. 그래,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의 손을 잡고 호수 앞에 섰던 날 눈을 찌르던 빛, 그 눈부신 윤슬.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발끝을 내려다보던 노인에게 누군가 말을 건다. "어르신, 버스가 오려면 한참 기다려야 해요. 바람도 찬데, 잠시 저기 들어가서 차 한 잔 마시며 기다릴까요?" 노인은 선선히 그를 따라간다. 요양원 입구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거기, 버스정류장은 그대로 있다. 노인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번진다.

가끔 실종경보 문자를 받는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이름과 성별 나이 키 몸무게는 기본이고 복장과 특이사항이 추가된다. 대상이 노인이면 치매를 앓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본 노인도 그런 노인들 중 하나였다. 중년의 여성이 노인네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는 걸 본 순간 짚이는 게 있었다. 순찰차가 노인을 태우고 가는 걸 보고서야 걸음을 뗐다. 노인의 바지에 묻은 축축한 얼룩과 혼탁한 눈빛이 쉬 지워지지 않았다.

문득 옷감을 염색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한 장면 또 한 장면…. 사람의 한살이가 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감에 묻은 불순물을 제거한다. 천연재료를 푹 삶아 물을 우려낸다. 우려낸 물에 옷감을 담그고 손으로 치대고 주물러 준다. 이때 주의할 점은 적정 온도를 유지해 주는 것이다. 염료와 옷감의 결합이 원활하도록 백반이나 잿물 따위의 매염제를 푼다. 여러 번 헹궈 염료 찌꺼기를 제거한 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린다. 그 노인은 지금 어떤 단계일까. 첫 단계에 해당할 것 같지만 그건 외관상의 문제이고 기실은 마지막 단계일 게 분명하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엔 마음을 헹군다. 그런들 결코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이 옷감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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