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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취소 특검법 '역풍론'…선거 직전 '샤이'와 '부동층' 자극하나? [금주의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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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영남권 시도지사 후보 5명이 지난 5월 6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소취소 특검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영남권 시도지사 후보 5명이 지난 5월 6일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소취소 특검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원내대표 직무대행과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이 지난 4월 30일 국회 의안과에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원내대표 직무대행과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이 지난 4월 30일 국회 의안과에 '윤석열 정치검찰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6.3 지방선거 및 14곳 '미니총선급'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이 본래 내세운 이름보다는 '(이재명 대통령)공소취소 특검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선거판 전체를 흔드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부동층'(마음이 흔들리는 유권자)과 '샤이'(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지만 투표장에선 표심을 드러내는 유권자)의 표심 변동을 자극한다는 얘기다.

◆현직 대통령 사건도 공소취소 대상?

논란의 핵심은 특검이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 유지 여부까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특검법안 제8조 제1항에서는 '특별검사는 수사경과를 고려하여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수사, 기소 또는 공소유지 중인 사건에 대하여 이첩을 요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 이어 제8항에서 '특별검사는 제1항에 따라 이첩받은 사건의 공소유지(공소유지 여부의 결정을 포함한다) 업무를 수행한다'라고 규정했다. 이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 전체와 대법원에서 유죄 파기환송 된 공직선거법 위반사건도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집권여당 민주당은 "조작수사와 정치기소를 바로잡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하지만, 제1야당 국민의힘은 "대통령 재판을 없애려는 셀프 면죄부"라며 강력 반발 중이다.

문제는 이 논쟁이 단순 법률 해석 문제를 넘어 지방선거 민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맥락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 또한 시사평론가들은 "투표를 포기했던 보수층을 다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바로 '샤이 보수' 결집 가능성이다.

◆'민생' 말고 '사법논란' 부각, 자충수?

여당 입장에선 "중앙당이 불필요한 이슈를 키웠다"는 내부 불만을 만들 수도, "지방선거 이후 처리하라"는 신중론을 도출할 수도, 실은 "이미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다"는 성토가 지선 현장 여기저기서 나올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이번 논란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부동층과 샤이의 반응 때문이다. 지선은 투표일에 임박해 전국적 정치 이슈가 터지면 흐름이 급격히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중앙 정치에 지분이 없거나 미미한 지선 후보들은 뜬금 없이 날아든 날벼락에 더욱 억울해 할 수 있다. 마치 프랜차이즈 본사의 실책 같다고 느낄 수도. 단골과 잠재 고객 모두 경쟁 점포로 가게 만들었다며.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 앞서 '윤석열 정권 심판'(내란 종식)과 '민생 회복'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런데 여기에 마치 노이즈처럼 끼어든 프레임이 바로 공소취소 특검법 논란이다. 이 경우 선거 구도 자체가 '사법 리스크 방탄' 논쟁으로 옮겨질 수 있다. 이를 놓칠새라 국민의힘은 "사법 쿠데타" "셀프 면죄부" "특급 범죄자 면죄부법" 등의 강경 표현을 앞세워 국회는 물론 지선 현장에서도 대여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게 남은 선거기간, 즉 6월 3일까지 3주 동안 이어질 태세다. 유권자들은 마치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표심을 바꿀 수 있다. 가령 "과거 검찰권 남용을 바로잡으려는 거야"라고 설득해도 "살아있는 권력이 자기 재판에 개입할 여지가 있잖아"라고 반박한다면? 전자는 복잡한 법리를 먼저 짚어보게 하지만 후자는 직관적 이미지로 연결된다. 무엇이 더 강한 동인이 될까.

표심 향방을 알기 힘든
표심 향방을 알기 힘든 '부동층'(마음이 흔들리는 유권자)과 '샤이'(지지 후보를 밝히지 않지만 투표장에선 표심을 드러내는 유권자). AI로 형성한 이미지

◆선거 직전 부동층·샤이 움직인 사례들

이번 논란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단정해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비슷한 시점, 즉 선거 직전에 불거진 논란이 선거의 키를 쥔 부동층과 샤이를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역사로 기록돼 있다.

공통 요소는 '견제 심리'다. 한마디로 "이건 막아야 한다"는 말을 행동으로 실천케 하는 것이다. '결집'이라는 오래된 정치 용어가 있다. 한 진영에서 결집이 강해질수록 반대 진영에서는 '역풍'이라는 정치 용어가 힘을 키운다. 대선·총선과 비교해 소규모 선거구의 경우 단 몇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사례가 곧잘 나오는 지방선거는 그 영향을 더욱 강하게 받을 수 있다.

물론 대선과 총선 역시 부동층과 샤이가 결과를 좌우한 사례가 적잖다.

1997년 11월 22일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가고 20일 뒤이자 15대 대선 닷새 전이었던 그 해 12월 13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와 김영삼 대통령이 만났다. e영상역사관, AI로 보정
1997년 11월 22일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가고 20일 뒤이자 15대 대선 닷새 전이었던 그 해 12월 13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와 김영삼 대통령이 만났다. e영상역사관, AI로 보정

▷1997년 15대 대선 'IMF'

비슷한 시점에 부동층·샤이를 흔든 대표적 사례로 '1997년 외환 위기'가 있다. 그 해 11월 22일 대한민국이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같은 해 12월 18일 15대 대선일이 채 1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권 책임론이 선거판을 잠식했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정권교체론을 부르짖었다. 그런데 선거 막판이다보니 음모론도 제기돼 일부 먹혀들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정권을 넘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대선 직전 구제금융 신청을 했다는 얘기였다.

허무맹랑한 음모론이야 시간이 지나며 힘을 잃었지만, 김대중 후보에겐 당시 더욱 뿌리 깊었던 지역감정이 난관이었다. 애초 그때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은 선거로 뽑았건 뽑지 않았건 죄다 영남 출신이었다.

이 관성이 곧 표심이 돼 이회창 후보가 막판까지 지지율을 올렸으나, 결국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 39만557표(1.53%포인트) 차로 진땀승을 거뒀다. 당시 김대중 40.27%, 이회창 38.74%, 그리고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 19.20%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니, 기본적으로 절대량이 더 많았던 보수 표심 가운데 샤이 보수가 흔들린 결과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선거 한 달 전 IMF 체제 돌입은 그래서 미미한 차이로나마 당락을 가른 결정적 사례였을 수 있다.

당시 이회창 후보에게 제기된 병풍(두 아들 병역비리 의혹) 자체는 IMF 이슈엔 밀렸지만, 이게 이인제 후보의 신한국당 대선 경선 결과 불복→탈당→출마를 만들어 김대중 후보를 돕는 또 다른 요소가 됐다. 이인제 후보의 거취 표명은 대선 3개월 전 이뤄졌으니, 이 역시 선거 직전 부동층·샤이를 움직인 사례다.

2002년 16대 대선 후보 단일화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 노무현 후보로 최종 단일화가 이뤄졌으나 정몽준 후보가 선거일 전날 밤 지지 철회를 했다. 연합뉴스
2002년 16대 대선 후보 단일화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 노무현 후보로 최종 단일화가 이뤄졌으나 정몽준 후보가 선거일 전날 밤 지지 철회를 했다. 연합뉴스

▷2002년 16대 대선 '지지철회'

사실 IMF 구제금융은 선거에 출전한 후보가 직접적으로 잘못한 게 없는데 '툭' 떨어진 악재(상대에겐 호재)였을 수 있다.

이와 달리 당사자의 선거 직전 오판이 패착이 된 대표 사례가 있다. 그것도 투표일 하루 전에. 2002년 16대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및 지지 철회 사건이다.

당시 1강(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2중(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구도가 2, 3등 후보들 간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좀 더 정확히는 당 경선에선 돌풍을 일으켰지만 본선에선 이회창 후보에 추격을 당하던 노무현 후보가 상승세를 타던 정몽준 후보와 합친 맥락이었다.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후보가 최종 후보로 결정됐고 처음엔 승복한 정몽준 후보는 선거 전날(2002년 12월 18일) 밤 지지 철회라는 헌정사상 역대급 뒤통수 때리기를 구사했다. 그럼에도 노무현 후보는 당선됐다.

전날 지지 철회 시점으로부터 다음날 투표 종료 시점까지 24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어떤 정치공학적 상황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기록이 있을리 만무하다. 다만, 누가 봐도 '배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 이 사건에 분노한 수많은 표심의 향방을 노무현 후보에게 집중시켰다는 분석이 전해진다. 특히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 투표 독려가 큰 효과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샤이 진보'의 결집.

결국 정몽준 후보의 오판은 이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축소시킨 것은 물론, 이회창 후보의 대선 2연패에 일조했다. 득표율은 노무현 48.91% 대 이회창 46.58%. 불과 2.33%포인트 차이였다.

20대 총선
20대 총선 '옥새 파동'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2016년 3월 24일 오후 부산 영도구 자신의 선거사무소 인근 영도대교에서 카메라 기자들 앞 고뇌에 찬 포즈를 취했다. 연합뉴스

▷2016년 20대 총선 '옥새파동'

이번 공소취소 특검법 논란에서도 보이듯, 정당 차원의 행보가 논란이 되고 부정적 인식을 주면서 정치적 피로감도 야기한 사례는 딱 10년 전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20대 총선 3주를 앞두고 여당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서 터진 '옥새 파동'이다.

스토리는 진작 작성되고 있었다. 진박(진실한 친박근혜) 감별이라는 '요상한' 분위기가 바탕에 깔린 상황에 지금도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역대급 공천 파동의 장본인으로 거론되는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의 공천 폭거가 연일 언론 보도로 전해지고 있었다. 이때 비박 김무성 당 대표가 일부 친박계 후보 공천장에 도장('옥새'에 비유)을 찍지 않고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부산으로 가 버리는 초유의 상황을 벌인 것.

김무성 대표 자신이야 대치하던 청와대(박근혜 대통령)에 그토록 바라던 우세한 위치를 점하는 작은 성과를 얻었지만, 당은 과반 확보에 실패하며 참패했다. 선당후사가 아닌 선사후당(先私後黨, 당보다 내 안위가 우선)이었다. 직전 19대 총선 127석에서 105석으로 의석 수가 쪼그라들었고, 더불어민주당(110석)에 원내 제1정당 자리를 빼앗겼다.

진박감별과 옥새파동이라는 명칭에서도 보여주듯 '시트콤'을 방불케 하고 '헛웃음'을 유발하는 내홍이 피로감을 넘어 정치적 혐오까지 유발해 부동층·샤이는 물론 강성 지지층으로부터도 꽤 표심을 잃은 사례로 평가된다. 혹여 지금 정치권이 재차 시트콤을 찍으며 재미도 감동도 없는 유권자 반응을 형성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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