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숫자 '2'와 '1'을 붙여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1995년 민간단체 행사로 시작돼, 2007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됐으니 역사가 꽤 깊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 의미는 여전할까. 요즘의 '둘'과 '하나'는 어떤 모습일까.
"'둘(2)'의 모습 자체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임아현(30)·최진아(30) 씨의 말이다. 두 사람은 동성 연인이자 서로를 부부라고 부르는 관계다. 지난 3월 대구 남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며 스스로의 관계를 사회 안에서 드러냈다. 과거 '표준 부부'라는 틀 안에 담기지 못했던 관계들이 사회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하나(1)'가 되는 방식 역시 예전과 달라졌다. 김다현(32)·이승우(34) 씨 부부는 생활비와 가사, 육아 시간을 엑셀에 기록한다. 누가 어떤 지출을 했는지, 집안일과 육아를 얼마나 맡았는지까지 정리하며 서로에게 가장 합리적인 관계의 형태를 찾는다. "억지로 하나가 되기보단, 행복한 둘을 유지하는 부부가 더 나은걸요."
숫자는 여전히 '2'와 '1'이지만, 그 안의 의미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바야흐로 '둘'의 범위도, '하나'가 되는 방식도 달라진 시대. 부부는 이제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모습과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간매일은 5월 21일 부부의 날을 맞아 달라진 시대 속 '요즘 부부'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 넓어진 둘(2)의 범위
임아현(30)·최진아(30) 씨의 집에는 불수리통지서가 액자에 걸려 있다. 지난 3월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민원실 직원에게 되돌려 받은 서류다. 해당 문서에는 '헌법 제36조 제1항 및 민법 제812조·제826조 등에 따라 수리할 수 없는 동성 간 혼인'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서를 받은 이유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단순한 신고 절차를 넘어, 동성혼 법제화를 바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혼인신고서를 제출했다.
임 씨는 "동성 연인의 혼인신고 '접수' 자체가 가능해진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22년 3월부터 가능해졌다"며 "이런 시도들이 계속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제도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가정법원에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에 대한 불복 이의신청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혼인신고 불수리 불복 신청은 동성부부의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않는 처분에 불복하는 사건으로, 이른바 '혼인평등소송'으로 불린다. 대구 지역에서 혼인평등소송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에게 '부부'란 특별한 개념이 아니다. 함께 눈을 뜨고, 집을 청소하고, 하루를 나누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 가깝다. 임 씨는 "마음 맞는 사람과 서로 기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라며 "누구에게나 가족이 따뜻함과 안정감을 주는 존재이듯, 우리에게도 가족은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다. 이어 "행복한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도 더 행복해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 결혼·시선 보다 '관계' 자체에 의미
과거에는 결혼과 혈연을 중심으로 가족과 부부의 형태가 정의됐다. 하지만 이제는 법적 관계 밖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형태의 '둘'이 등장하고 있다. 과거 '표준 부부'의 범위 밖에 있던 관계들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흐름이다.
10년째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는 문모 씨(47)는 "관계는 중요하지만 혼인 제도 자체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법적 부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족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함께 살되 각자의 독립성도 유지하고 있다. 주변에 우리 같은 비친족 가구가 꽤 많다"고 덧붙였다.
비친족가구는 8촌 이내 친족이 아닌 사람들끼리 함께 사는 5인 이하 가구를 뜻한다. 결혼하지 않은 연인, 친구, 동료 등과 함께 거주하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친족가구는 2020년 약 42만 가구에서 2024년 58만 가구를 넘어섰다.
이러한 '둘'의 변화는 젊은 세대만의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과거에는 사회적 시선과 역할에 맞춰 관계를 포기해야 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원하는 관계를 선택하려는 흐름도 나타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65세 이상 재혼 건수는 6천326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남성은 6.4%, 여성은 15.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재혼 건수가 남성 1.0%, 여성 2.6%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노년 재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나 자녀 문제 등을 많이 고려했다면, 최근에는 외로움과 정서적 안정, 삶의 동반자에 대한 필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라며 "특히 여성들도 노년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N빵! 합리적 부부 생활
'둘'의 모습이 달라진 만큼, '하나'가 되는 방식 역시 변하고 있다. 과거 부부가 '무조건 하나 되는 관계'에 가까웠다면, 요즘 부부는 서로에게 가장 맞는 방식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생활비부터 가사, 육아까지 역할과 기준을 직접 정하고 기록하는 부부들의 등장이다.
김다현(38) 씨 부부의 '합리적 결혼생활'은 연애 시절 만든 데이트 통장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토스 공동계좌로 가계부를 공유하고, 집안일은 엑셀로 정리한다. 아이가 태어난 작년부터는 야간수유 교대표와 육아 분담표도 추가됐다.
김 씨는 "10원 단위까지 더치페이 하는 시대인데 부부라고 예외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예전에는 '내가 더 하는 것 같은데'라는 억울함이 마음속에 쌓였다면, 지금은 기준을 정하고 기록하다 보니 오히려 덜 싸우고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대 사회에서 중요해진 '공정 감수성'이 부부 관계까지 확장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이른바 'N분의 1 문화'의 마지막 성역은 "가족끼리 네 것 내 것이 어딨냐"는 인식이 강했던 가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 안에서도 '공정한 분담'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와 경제적 불안, 각자생존의 분위기 속. 과거 희생과 배려가 미덕으로 여겨졌다면 지금 세대는 관계 안에서도 '억울하지 않은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전업주부들 사이에서도 엑셀 활용은 낯선 일이 아니다. 과거 '당연한 역할'로 여겨졌던 육아와 집안일 역시 하나의 노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다. 실제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무급 가사노동 가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582조4천억원 규모로 추산됐다. 1인당 평균으로 환산하면 월 약 93만7천원 수준이다.
주부 정은수 씨(29)는 "집안일도 밖에서 돈 버는 것만큼 중요한 노동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부부는 남편의 경제적 기여와 제 가사노동 기여를 최대한 비슷하게 맞추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집안일과 육아 시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해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보며 부부간 역할을 다시 조율하는 것이다.
◆ "부부가 꼭 함께해야하나요"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집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과거에는 '부부니까 함께해야 한다'고 여겨졌던 시간에 대한 인식 역시 달라지고 있다. 이대호(31) 씨 부부는 명절이면 양가 어른들을 함께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지만, 잠은 각자 본가에서 잔다. 명절 스트레스와 이동 피로를 줄이기 위해 내린 나름의 '합리적 선택'이다. 이 씨는 "처음에는 부모님도 조금 당황하셨지만 지금은 '너희가 편한 대로 하라'고 하신다"며 "예전에는 부부면 무조건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면, 지금은 서로 편한 방식을 조율하는 쪽에 가깝다"고 말했다.
남편은 캠핑을 가고 아내는 집에서 혼자 쉬는 식으로 주말을 따로 보내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여행이나 동창 모임에도 각자 참석하고, 경조사 역시 상황에 따라 한 사람만 다녀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각방 생활이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이른바 '각집 살이'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늘 함께 있는 것'이 좋은 부부의 기준처럼 여겨졌다면, 지금은 서로의 시간과 취향을 존중하는 방식 역시 관계를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가하면 남성과 여성의 역할 자체가 뒤바뀌기도 한다. 밖에서 일하는 엄마와 집에서 살림·육아를 맡는 전업 아빠의 모습이다. 실제 국가데이터처의 신혼부부통계를 보면 결혼 5년 이내 외벌이 가정에서 아내가 버는 비중은 2019년 16.1%에서 2024년 19.0%로 증가했다. 전통적인 '남편 생계·아내 돌봄' 공식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전업아빠 김정현 씨(34)는 "'가족에게 가장 합리적인 형태가 무엇인가'를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며 "아내가 일하고 내가 아이를 돌보는 방식이 당시 우리 가족에게 더 잘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계획했던 삶은 아니었지만 부부가 충분히 상의해 함께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후회는 없다"고 덧붙였다.
가부장이 아닌 가모장을 선택했다는 김보라(39) 씨 역시 "지금은 내가 벌고 있지만 또 달라질 수도 있다"며 "성별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역할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를 '정답형 부부'의 해체로 해석한다. 과거에는 사회가 정해둔 역할과 방식에 관계를 맞춰야 했다면, 이제는 각자의 상황과 가치관에 따라 가장 적합한 형태를 조율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부부가 사회가 정해둔 역할에 스스로를 맞춰야 했다면, 이제는 각자의 삶에 맞는 관계를 함께 설계해가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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