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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의 두발 산책] 대구 지명의 뿌리를 찾아서… 왕건과 지명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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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전경. 대구시 제공.
팔공산 전경. 대구시 제공.

매일 지나치는 익숙한 지명 속에는 1천 년 전 태조 왕건의 '절체절명의 탈출로' 역사가 담겨 있다. 왕건과 견훤의 군대가 팔공산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며, 대구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지금은 평화로운 모습이지만, 과거 이곳은 치열한 전쟁터였다. 전쟁의 서막부터 그 사연을 좇아보자.

◆ 경주를 삼킨 견훤

시계를 927년 후삼국 시대로 돌려보자. 당시 고려와 신라는 손을 잡고 후백제를 압박하려 했다. 이에 맞선 후백제의 견훤은 거세게 반격하며 판을 뒤집으려 했다.

견훤은 이대로 무너질 수 없었다. 그는 신라를 정조준했다. 문경과 영천을 차례로 휩쓴 뒤 마침내 경주로 진격했다. 다급해진 신라는 고려의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왕건은 군사를 이끌고 경북으로 향했다.

그러나 견훤이 한발 빨랐다. 경주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군대에 짓밟힌 백성들은 피할 틈도 없이 쓰러졌다. 견훤은 경애왕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몰아붙였고, 경순왕을 강제로 왕위에 앉혔다. 이어 경순왕의 친족들을 포로로 끌고 가며 성대한 귀향길에 올랐다.

왕건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목표는 단 하나, 돌아가는 견훤 군대의 뒤통수를 치는 것. 지금의 팔공산 동화사 인근에 군사를 매복시켜 두고, 그가 방심하는 순간 단숨에 끝장을 낼 생각이었다. 신라의 왕은 이미 죽었다. 견훤이 여기서 더 덩치를 키운다면, 다음 차례는 고려일지 모른다. 왕건의 눈에는 살기마저 서려 있었다. 바야흐로 '공산 전투'의 시작이었다.

◆ 무태, 왕의 한마디

돌아가는 후백제군을 덮치려면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했다. 왕건은 기동력이 뛰어난 기병들을 중심으로 군을 꾸렸다. 그리고 고려의 왕인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섰다.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한순간에 적을 집어삼키기 위해서였다.

왕건은 진군하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적진이 멀지 않다. 한눈팔지 말고 서둘러 나아가자.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고, 견훤의 군대를 끝장내자". 왕의 외침에 병사들은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들이 '게으르지 말라(무태)'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행군했고, 그 군사들의 발길이 닿은 곳이 훗날 '무태'라는 지명을 얻게 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대구 북구 연경동에 있는 대구 최고령 노거수인 느티나무는
대구 북구 연경동에 있는 대구 최고령 노거수인 느티나무는 '연경동 천년 느티나무' 또는 주민들이 할아버지 나무로 부르는 보호수이다. 매일신문 DB.

◆ 전장에 스민 독서, 연경동

'경전을 연구한다'는 뜻의 '연경동' 지명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왕건의 군대가 이 일대를 지나던 때였다. 그의 귀에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비들이 경전을 읽으며 학문을 닦는 소리였다.

견훤의 군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무장한 채 진군하던 왕건에게 그 낭랑한 독서 소리는 깊은 인상을 남긴 듯하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 기억이 오늘날 '연경동'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됐다고 한다.

◆ 살내가 된 동화천

전쟁은 왕건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견훤과 왕건은 지금의 태조지로 불리는 산자락에서 크게 맞붙었지만, 승기는 견훤에게 기울었다. 신라를 짓눌렀던 그 기세 그대로 후백제군은 고려군을 거세게 밀어붙였고, 예상 밖의 공세에 왕건은 결국 후퇴를 결심한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했다면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왕건은 지금의 동화천 일대에서 군열을 가다듬으며 반격의 기회를 노렸다. 강 건너편에는 견훤의 군대가 눈에 살기를 품은 채 진을 치고 있었다.

두 군대는 천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맞섰다. 화살과 창이 빗발치고, 누가 쫓고 누가 쫓기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천을 따라 떠내려온 화살이 강물을 뒤덮을 만큼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천을 '살내'라 불렀다.

전쟁의 흔적은 사라지고, 풀과 물고기가 자라는 동화천 산책길을 주민들이 걷고 있다. 정두나 기자.
전쟁의 흔적은 사라지고, 풀과 물고기가 자라는 동화천 산책길을 주민들이 걷고 있다. 정두나 기자.

◆ 과거 전장, 이제는 쉼터

지금의 동화천은 격전의 기억이 무색할 만큼 평화롭고 고요하다. 한때 피 냄새가 짙게 배었을 물가에는 은은한 물비린내만 맴돌고, 팔공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에는 화살 대신 작은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친다.

낮은 물결이 흐르는 천변에는 소금쟁이와 왜가리가 노닌다. 강변에 자라는 억새 상에는 조잘조잘 떠드는 듯 새들이 풀을 간지럽히는 소리가 난다. 주민들은 가볍게 달리거나 천변에 마련된 운동 기구에 앉아 몸을 푼다. 장미가 피어나는 계절이면 산책로는 붉은빛으로 물들고, 밤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져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한때 왕건이 목숨을 걸고 달아나야 했던 동화천은 이제 사람들의 산책길과 쉼터로 쓰이고 있다. 공간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동화천처럼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또 다른 지명들에도, 아직 들춰보지 못한 왕건의 흔적과 이야기가 남아 있다. (다음 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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