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과 낙화암은 한 나라가 기울어간 흥망성쇠의 문학적 상상력을 일깨우는 상징적 공간이다. 고려 후기의 문신인 민사평은 백제의 옛 수도 부여를 지나는 길에 '부여회고'(夫餘懷古)라는 시를 남겼다.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고도(古都)의 황량한 자취를 탄식하며 역사와 인생의 무상함을 회고한 것이다.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도 1795년 백제의 옛터전을 둘러보며 같은 제목의 칠언율시를 남겼다.
'술잔 잡아 계백에게 따르고 싶으나(欲把殘杯酹階伯) 안개 낀 낡은 사당에 덩굴풀만 얽혀있네(荒祠煙雨暗藤蘿)'. 왕조의 패망과 충신의 최후가 응결된 자리를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홍춘경도 망국의 회한이 감도는 '낙화암'을 제목으로 시를 지었다. 나라가 망하니 산하도 옛날과 다른데(國破山河異昔時) 강 위에 홀로 뜬 달은 몇 번이나 차고 기울었던가(獨留江月幾盈虧)'.
백제의 비극적 역사성은 대중의 감성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부여의 백마강과 낙화암이 대중가요에 숱하게 등장하는 이유이다. 그 출발이 '낙화암'(1933)이라는 노래였다. 1910년경 춘원 이광수가 쓴 시에 곡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사자수 나린 물에 석양이 비낄 제, 버들꽃 날리는 데 낙화암이란다, 모르는 아이들은 피리만 불건만, 맘 있는 나그네의 창자를 끊노라, 낙화암 낙화암 왜 말이 없느냐'.
백제의 흥망을 노래한 대표곡은 뭐니 뭐니 해도 '꿈꾸는 백마강'(1940) 이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데, 구곡간장 올올이 찢어지는 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구려'. 이인권이 부른 '꿈꾸는 백마강'은 망국의 서사시이다.
백제 멸망 최후의 공간인 백마강과 낙화암의 애틋한 전설을 원용해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을 절절하게 대변했다. 노랫말을 지은 사람은 조명암이다.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시창작과 더불어 주옥같은 가요시를 많이 남긴 문인이다. 삭발 출가의 이력을 지녔던 조명암은 패망으로 스러져간 백제의 옛 터전을 달빛으로 물들이며 처연한 감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 울면, 계백장군 삼척검은 임 사랑도 끊었구나, 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광복 이후에 나온 허민의 '백마강'(1954)도 그 연장선상이다.
'꿈꾸는 백마강'과 노랫말도 유사하다. '백마강 달밤' '고란사 종소리' '구곡간장' '낙화암' '삼천궁녀' 등이 겹친다. 2절 가사에서 '철갑옷에 맺은 이별'과 '계백장군 삼척검'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 등이 등장하면서 보다 서사적이고 좀더 비장한 면모를 드러낸다. 가수 허민의 유장하면서도 공명이 깃든 특유의 성음이 백마강의 달밤을 짙은 비감으로 채색하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백제는 슬픈 이름으로 남았다. 그 옛터인 부여는 시린 감성을 지닌 공간이다. 망국의 종착역이자 궁녀의 낙화(落花) 지점은 그 정점이다. 달빛 어린 백마강에는 탄식의 물결이 일렁거린다. 백제 마지막 공간이었던 부여 낙화암 산기슭에는 해마다 봄꽃이 어우러지고, 낙화의 서사를 품은 백마강의 물결도 말없이 흐르는가. 낙화암 낙화암아 말을 해다오.
대중문화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李대통령 "저질들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 투표하셨나요"
'눈물 호소' 김부겸 vs '경제 강조' 추경호…대구시장 선거 막판 총력전
뜨거웠던 지선 끝나면, 여야 정치권에 '후폭풍' 몰려온다
李대통령 "빚때문에 가족 끌어안고 죽을 정도면 파산·면책 해줘야"
홍준표 "박근혜, 비대위원장 하려고 전국 도나…왜 저러는지 이해안돼"